박현경(24, 한국토지신탁)이 4차 연장이나 가는 혈투 끝에 시즌 두 번째 우승컵을 끌어안았다.
2024 시즌 KLPGA 투어 14번째 대회인 ‘BC카드 · 한경 레이디스컵 2024’(총상금 14억 원, 우승상금 2억 5.200만 원)는 박현경과 윤이나(21, 하이트진로)의 4차 연장 혈투로 오래 기억되게 생겼다. 박지영(28, 한국토지신탁)도 3차 연장전까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함께 했다.
23일 포천힐스 컨트리클럽(파72/6,528야드)에서는 KLPGA 투어를 대표하는 두 개의 강력한 팬덤이 맞붙었다.
열성 팬층을 끌고 다니는 박현경과 윤이나가 우승컵을 놓고 매치플레이를 방불케 하는 맞대결을 펼쳤기 때문이다. 둘은 같은 경기조는 아니었다. 3라운드에서 같은 조로 경기를 펼쳤지만 윤이나가 다소 부진한 바람에 최종 라운드에서는 조가 갈렸다.
조가 갈린 것이 두 선수 모두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계기가 됐는지도 모른다. 최종 라운드에서 둘은 유감없이 경기력을 뽐냈다.
윤이나는 버디 8개, 보기 3개로 5타를 줄였다. 경기 중반에는 단독 선두에도 올랐다. 15, 17번홀 보기로 연장의 빌미를 준 게 아쉬웠다. 정규 18번홀을 끝냈을 때는 최종합계 12언더파, 박현경과 동타가 돼 있었다.
박현경은 버디 4개, 보기 2개로 2타를 줄였다. 윤이나 보다는 날카로움이 덜했지만 그래도 선두 경쟁에서 떨어져 나가기는 않았다.
윤이나와 박현경의 승부처는 정규전에서도, 연장전에서도 파5 18번홀이었다. 맹장 수술에서 온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박지영도 18번홀에서의 활약으로 명승부에 이름을 올렸다. 연장전에서 윤이나와 박현경은 진짜 매치 플레이를 했다.
이 대회 18번홀은 파5이지만 드라마틱한 요소를 위해 투온이 가능하도록 세팅해 놨다. 누가 봐도 장타자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그리고 장타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하면 버디는 하고 가야 손해를 안 본다.
그런데 정규 라운드에서 윤이나와 박현경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홀 설계자의 의도대로만 결과가 나왔으도 둘의 연장 승부는 없었을 터다.
윤이나는 18번홀에서 드라이버 실수가 있었다. 공이 왼쪽으로 쏠리면서 가파른 언덕배기에서 세컨드 샷을 해야 했다. 결국 이 홀에서 파를 했는데, 버디를 잡았다면 우승컵은 그녀의 차지였다.
박현경도 마찬가지다. 앞 조의 윤이나가 경기를 마쳤을 때 둘은 동타가 돼 있었다. 박현경의 두 번째 샷도 핀 근처까지는 가 있었기 때문에 차분히 버디만 잡았어도 연장이 필요 없었다. 두 선수가 모두 18번홀의 보너스를 챙기지 못한 탓에 이 홀에서 버디를 잡은 박지영까지 함께한 피말리는 연장전이 성사됐다.
연장 3차전에서 박지영이 떨어져 나가고 박현경과 윤이나만 남은 4차전이 펼쳐졌다.
박현경의 드라이버 샷은 연장전이 계속될수록 거리가 점점 짧아졌다. 투온 보다는 ‘스리온-버디’ 전략이 예상됐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박현경의 우드 샷 소리가 경쾌했다. 잘 날아간 공은 그린 입구에 떨어지더니 그린 위로 굴러갔다.
반면 장타자라 거리에서 유리한 조건인 윤이나는 세컨드 샷이 그린 에지에 떨어졌다. 박현경은 버디에 성공했고, 윤이나는 실패했다.
이 상황을 때문에 박현경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뜻밖의 우승이었다. 18번이 투온이 되는 홀인데, 거리가 안되는 제가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밖으로 저에게 기회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현경은 이날 우승으로 시즌 2승, 개인통산 6번째 우승을 챙겼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