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 2024(6월 14일~7월 14일·이하 현지 일자)를 치르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포르투갈)의 심정은 희비쌍곡선을 그리고 있지 않나 싶다. 마냥 웃으며 기뻐할 수만도 없고, 내처 울며 슬퍼할 수만도 없는 복잡한 마음일 듯싶다.
기록적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 먼저 출장 면에선, 호날두는 유로 역사를 새로 썼다. 최다 대회 출전과 최다 경기 출장 분야에서, 새 지평을 열거나 독보적 선두를 이어 갔다. 웃을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득점 면에선, 자신이 써 내려가는 역사를 갈아 치우지 못하고 있다. 득점 기록에 관한 한 세계 으뜸이라 자부하는 호날두로선 자존심에 흠이 갈 만한 부진한 골 폭발이다. 울 수밖에 없는 교점(交點)이다.
대회 최다 출장 기록은 자신이 갖고 있던 기록을 경신했다. 5회에서 6회로 한 걸음 더 나갔다. 홈에서 열린 2004 포르투갈 대회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이래 2024 독일 대회까지 줄기차게 이어 왔다. 지난 18일 이번 대회 그룹 스테이지 F 체코전을 디딤돌로, 신기록을 썼다. 아울러 사흘 전, 그룹 스테이지 B 스페인전을 통해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루카 모드리치(38·크로아티아)를 다시 한 걸음 차로 밀어냈다.
최다 경기 출장은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여섯 번 대회에서, 28경기를 뛰며 단연 선두를 내달린다. 2위에 자리한 페페(41·포르투갈·21경기)를 제치고 멀찍이 앞서고 있다. 더구나 이번 대회에서,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게 분명하다. 이번 대회에서, 호날두는 그룹 스테이지 3경기에 모두 모습을 비췄다. 반면, 페페는 마지막 조지아전(26일)에서 결장하며 2경기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이번 독일 대회를 발판으로 최고령 출장 기록을 세운 페페의 체력을 고려한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의 안배에 따라, 차이는 한 걸음 더 벌어졌다.
그러나 득점 면은 전혀 딴판이다. 호날두는 아직 골맛을 보지 못했다. 지난 다섯 번의 대회에서, 14골을 터뜨리며 1위에 올라 있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이 부문 역대 2위에 자리한 미셸 플라티니(69·프랑스·9골)를 다섯 걸음씩이나 따돌리고 앞선, 예전의 호날두가 아니다. 이번 대회 그룹 스테이지에서, 체코(2-1 승)-터키(3-0 승)-조지아(0-2 패)를 상대로 3경기를 치르며 아직 단 한 차례도 골문을 열어젖히지 못했다. 11개국에서 분산 개최된 2020 대회 16강 벨기에전(0-1 패)부터 이어진 ‘골 침묵’에서 4경기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다섯 번(2004~2016 프랑스) 대회에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득점포를 가동해(2→ 1→ 3→ 3→ 5) 온 호날두였다.
특히, 이번 대회 조별 라운드 마지막 조지아전(6월 26일)에선, 자존심을 구길 대로 구겼다. 골맛은 고사하고 완패의 수모를 당했다. 후반 21분 교체돼 물러 나왔을 뿐만 아니라 전반 28분엔 옐로카드까지 받았다.
비록 포르투갈이 이미 16강 결선 티켓을 따 놓은 상태라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하나, 충격적 결과였다.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 랭킹을 기준으로 했을 때, 유로 역사상 최대 이변이 벌어진 한판이었다. 74위(이하 6월 20일 기준) 조지아가 6위 포르투갈을 무너뜨리고 종전 기록을 9일 만에 경신했다. 물경 68계단을 초월한 대첩을 일군 조지아였다. 아흐레 전인 17일 그룹 스테이지 E에서, 슬로바키아는 벨기에를 1-0으로 물리치며 최대 이변을 일으키며 이 부문 기록을 갈아 치운 바 있다. 45위 슬로바키아는 42계단이나 앞서는 3위 벨기에를 꺾는(1-0) 개가를 올렸다.
마테우스가 보유했던 최장기간 출장 기록 경신한 호날두의 발걸음은 언제까지?
그런데 신은 확실히 짖궂은 듯하다. 호날두에게 영광의 일희(一喜)와 굴욕의 일비(一悲)가 갈마들게 하는 희롱을 즐기는가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지아에 굴욕을 당하기도 한 이번 유로 마당에서, 호날두는 또 하나의 대기록을 세웠다. 최장기간 출장으로 유로 역사의 신기원을 열었다.
최장기간 출장 기록 측면에서 보면, 이번 대회 그룹 스테이지는 호날두에겐 기록의 장이었다. 체코전에서 타이 기록을, 터키전(22일)에서 신기록을, 조지아전에서 최고 기록을 각각 세웠다. 호날두가 한 경기를 치를 때마다, 기록은 계속 늘어나며 쌓여 갔다. 호날두가 그린 궤적은 20년 6일→ 20년 10일→ 20년 14일로 잇달아 변모했다. 터키전에서 신기록을 세웠고, 조지아전에서 이를 다시 능가하는 최고 기록을 작성했다.
이번 대회를 치르기 전만 해도, 호날두는 이젠 전설화한 로타어 마테우스(63·독일)의 기록에 미치지 못했다. 마테우스가 24년 동안 지켰던 최장기간 출장 기록에 도전하는 처지에서 이번 대회에 도전장을 던진 호날두였다. 마테우스의 고국 마당에서 호날두가 새 기록을 세운 점도 신의 심술궂은(?) 안배는 아니었는지 모르겠다(표 참조).
마테우스가 세운 기록은 20년 6일이었다. 1980 이탈리아 대회 그룹 스테이지 A 네덜란드전(6월 14일·3-2 승)에서 첫발을 떼었고, 2000 벨기에-네덜란드 대회 그룹 스테이지 A 최종 포르투갈전(6월 20일·0-3 패)에서 마지막 발자국을 찍었다. 교체 투입돼 데뷔 무대를 치렀으나, 최종전에선 90분을 모두 소화했다. 독일이 최하위(1무 2패)로 조별 라운드를 돌파하지 못함으로써, 씁쓰레하기만 했던 고별 무대였다.
마테우스와 호날두는 여섯 번 대회를 맞이할 수 있는 20년에 걸쳐 유로 마당을 누볐다. 그러나 마테우스는 네 번밖에 유로 무대를 밟지 못했다. 반면, 호날두는 여섯 번 모두 유로 마당에서 뛰놀았다. 그래서인지 출장 경기 순위에서, 1위인 호날두에 반해 마테우스는 공동 72위(11경기)에 불과하다.
어쨌든 이번 대회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호날두는 최장기간 출장 기록 연장을 놓고 자신과 맞선다. 호날두가 경기에 나설 때마다, 유로의 이 부문 역사는 계속 바뀔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호날두의 걸음걸음에 시선이 사로잡히는 까닭이다. 포르투갈은 오는 7월 1일(한국 시각 2일 오전 4시) 슬로베니아와 녹아웃 스테이지 첫판 16강전을 치른다. 이번 대회에서, 호날두의 기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만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