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비극을 맞이했다. 그 시작은 어딜까.
대한축구협회(KFA)는 지난 7일 홍명보 감독이 차기 사령탑으로 내정됐음을 공식적으로 알렸고 8일 이임생 기술본부 총괄이사의 브리핑을 통해 홍명보 감독의 부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해당 발표 이후 홍명보 감독의 첫 공식 석상은 10일 오후 7시 30분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22라운드 광주FC와 맞대결이었다. 이정효 감독의 광주를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울산은 이날 0-1로 패배하며 광주전 4연패를 기록했다.
홍명보 감독이 본격적으로 대표팀 감독직에 대해 입을 연 건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이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도 대표팀 관련 질문이 나왔지만, 홍 감독으 "킥오프 30분 전이다. 끝나고 모두 말하겠다"라며 대답을 피했다.
기자회견서 만난 홍 감독의 얼굴엔 어두움이 가득했다. 근심, 걱정이 얼굴의 주름에 녹아 있었다.
홍 감독은 그간의 심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솔직한 심정은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라는 말로 시작했고 "2월부터 제 이름이 저의 의도와 상관없이 전강위, 축구협회, 언론에 나왔다. 정말로 괴로웠다. 뭔가 난도질 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라며 감독 후보에 거론된 심경도 밝혔다.
홍명보 감독은 "저는 계속 저에게 질문했다. 두려움이 가장 컸다. 제 축구인생에서 마지막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제 만 55세가 된 홍명보 감독에겐 이번이 아니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실제로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다시 대표팀 사령탑 자리에 국내 감독이 오르기까진 10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제가 전에 실패했던 과정과 그 후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지만, 반대로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승부욕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정말 팀을 새롭게 만들어, 정말 강한 팀으로 만들어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라고 속마읆을 털어놨다. 대표팀 감독을 향한 욕심이 없진 않았던 홍 감독이다.
이날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엔 홍명보 감독을 향한 비난의 걸개가 내걸렸다. 울산HD 지휘봉을 잡고 2022시즌, 2023시즌 K리그 우승에 성공하며 '전북 왕조'를 끝낸 홍 감독이다. 그간 비판도 많았지만, 울산 팬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받아왔다. 그랬던 홍 감독에게 이날은 "런명보", "축협의 개", "피노키홍" 등의 조롱성 문구가 내걸렸다.
홍 감독은 "응원의 구호가 오늘은 야유로 나왔다"라며 "전적으로 제 책임이다. 다시 한 번 울산 팬들, 처용전사, 이분들께 사과의 말씀 드리겠다.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비극적인 상황이다. 홍 감독은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KFA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치열한 우승 경쟁 중인 울산은 하루 아침에 '선장'을 잃었다. 감독을 잃은 팬들은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처절하게 실패하길 바란다"라는 저주를 퍼붓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엔 대한축구협회가 있다는 점이다. /reccos23@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