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블랙아웃에 이를 정도로 술에 취한 살인범이 한 장소에서 살해한 피해자 두 명을 제각각 다른 장소에 유기한다? 가능할 진 모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다.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10년 전 사건의 진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시신없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0년 형기를 채우고 나온 고정우(변요한 분)가 하설(김보라 분)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심보영(장하은 분)의 유골을 옆마을 폐교 배수관에서 발견했다.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피해자 박다은(한소은 분)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어디니? 왜 전화 안받아. 엄마가 다 말해줄테니까 전화 좀 받아. 집에서 엄마랑 얘기 좀 해. 보영아!”
드라마 시작부에서 심보영은 죽기 직전 술에 취한 모습으로 엄마 이재희(박미현 분)의 음성메시지를 듣고 있었다. 바로 그 날, 그에 앞서 심보영을 정우가 만났을 땐 정우 차 안에서 울고 있었다. 주폭인 아빠 심동민(조재윤 분)에게 맞아 입술이 터졌을 때도 “아, 피할 수 있었는데”하며 웃어넘겼던 씩씩한 그 심보영이 울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10년이 지나서야 현구탁(권해요 분)의 집에 와 있던 이재희가 진상을 밝혔다. “우리 보영이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봤잖아. 보영이 우리가 죽였잖아. 오빠하고 날 원망하면서 죽었을 거야.”
즉 현구탁은 당시 가사 도우미로 일하던 보영모 이재희와 불륜이었고 그 모습을 심보영이 목격한 정황으로 읽힌다. 그것이 씩씩한 심보영을 울린 이유였을 것이다. 엄마에 대한 배신감은 행실 방정치 못한 박다은에게 투영됐을 것이고 그런 박다은에게 목매는 고정우가 답답해 “박다은은 걸레”란 악담을 퍼붓고 울면서 뛰쳐나갔을 테다.
건오라는 이름도 새롭게 등장한다. 현수오(이가섭 분)의 쌍둥이 형쯤으로 추정된다. 애초에 시신 없는 살인사건의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친구들 중 한 명. “그래서 밤늦게까지 저희 집에서 놀았어요.”라 증언했던 아이는 수오가 아닌 건오였던 모양이다. 당시 아이들은 그날 정우가 다은이 때문에 열받아 있었고 취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사건 현장인 정우네 창고를 배경으로 한 수오의 그림 속엔 다섯 명이 등장한다.
아이들은 일곱이 몰려다녔다. 정우, 건오(이가섭 분), 병무(이태구 분), 민수(이우제 분), 보영, 다은, 나겸(고보결 분). 수오가 그린 다섯이 그 아이들이라면 혼자서 술을 마시던 정우가 빠졌을 것이고, 연락이 안됐던 또 다른 피해자 다은이 빠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보영이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셈이 된다.
고정우는 술파티를 취소했지만 아이들끼리는 그곳에서 파티를 열었다고 가정해 보자. 술이 들어갔을 것이고 특히 엄마에 대한 배신감에 절어있던 심보영은 손쉽게 무장해제 됐었을 것이다. 유골을 수거하면서 유류품에 속옷 하의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심보영을 향한 성폭행도 있었을 것이고 그 와중에 사단이 벌어졌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최나겸은? 수오의 그림 속에 3명은 뭉쳐있었고 다른 한 명은 떨어져 있었다. 신민수도 “너희끼리 창고에 안왔었어?”라 묻는 정우에게 “아 뭔소리야. 나 그날 건오네 집에서 병무랑 셋이 있었어. 그리고 너도 없는데 우리가 창고로 뭐하러 오냐?”고 대꾸했다. 즉 신민수도 최나겸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최나겸은 현수오에 이은 또 한 명의 목격자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심보영의 유골을 수습한 감식반이 하의속옷만 없었다는 말을 했을 때, 또 그 말을 받아 노상철이 성폭행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 옆에 있던 양병무의 어정쩡한 표정도 설명된다.
고정우를 범인으로 몰아갔던 결정적 증거인 피해자들의 혈흔이 묻은 신발 역시 조작된 뉘앙스다. 노상철이 상황을 염탐하며 “그 혈흔과 진흙이 묻은 고정우 신발을 찾은 게 과장님이시구나. 현장 어땠어요? 그 현장만 봐도 끔찍하던데.”라 넌지시 떠봤을 때 김희도(장원영 분) 과장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다. 당시 김희도는 부하 형사에게 콕집어 세탁기를 살펴보라 했고 그곳에서 문제의 신발은 발견됐었다.
한편 박다은(한소은 분) 사건은 시차를 두고 벌어졌나 보다. 당시 담당 형사 김희도는 “고정우가 심보영을 죽이고 피를 싹 닦았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박다은을 창고로 데려와서 또 살해를 한 거야.”라고 설명했다.
김희도는 제 입으로 당시 고정우가 블랙아웃에 횡설수설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워낙에 나쁜 놈였기 때문”으로 치부하는 편견과 무능력을 과시했다. 그런 주제에 증거를 조작했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거절못할 제안을 받았던 정황으로 보인다.
수사진이 고정우를 범인으로 지목한 결정적 이유는 박다은 할머니의 증언 때문이었다. 사건현장의 박다은과 통화하던 할머니는 “창고에서 놀다 갈거야.”란 말에 남자친구 고정우와 함께 있음을 예단했다. 그리고는 채 끊기지 않는 전화를 통해 현장을 청취했다.
변요한이 재연한 현장 청취 상황 속에서 가해자는 “발랑까진 고딩인게..말 그따위로 하지 말라고 그랬지?”라 외치며 박다은을 폭행했다. ‘발랑 까진 고딩’이란 표현은 같은 고등학생인 고정우라면 했을리 만무한 워딩이다.
그리고 국회의원 예영실(베종옥 분)의 연하 남편이자 무천사랑병원장 박형식(공정환 분)은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날아온 문자 하나를 받는다. “11년 전...날 죽인 건 당신이죠.”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비추어 박다은 살해범은 박형식인 모양이다.
그럼 문자를 보낸 건 누구일까? 현수오는 이 사건도 목격한 모양이다. 수오의 그림 중 하나에는 창고에서 여자의 목을 조르는 사람 뒤편에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가 누군지에 대한 단서는 아직 드라마가 노출하고 있지는 않다.
이쯤되면 심보영 사건 목격자란 가정하에 최나겸에 대한 의문이 짙어진다. 그녀는 왜 고정우가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을 방관했을까?
“전 그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고해도 상관없어요. 그 사람 때문에 배우를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고요.” 최나겸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대표님, 제가 왜 배우가 된 줄 아세요? 모두가 날 보면 걔도 날 봐줄까 해서. 근데 아직도 걔는 날 안봐요.” 최나겸이 소속사 대표(진희경 분)에게 한 말이다.
학창시절 나겸에게 정우는 첫사랑이자 영원한 사랑이였다. 하지만 안경잡이 소심덩어리였던 나겸에게 무천의 자랑스런 아들 정우는 너무 먼 별이었다. 그런 정우가 살인범이 된 날로부터 10년간 교도소의 정우는 그녀만의 남자였다. 모두가 외면해서 모두로부터 멀어진 별. 다만 최나겸만 그를 보고 그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도 이제는 끝난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문. 수오의 그림 속 인물들, 즉 심보영 살해와 유기혐의를 받는 존재들이 아이들이라면 “근데 병무야, 우리 학교 다닐 때 천수마을에 그런 곳 있었다는 거 아무도 몰랐잖아?”라 물었을 때 “그치!”라고 동조하는 병무의 표정은 너무 마땅했다. 즉 아이들이 범인이라면 가능치 않았던 유기 장소란 의미다. 그러니 수오의 그림 속 인물들이 아이들이라고 섣불리 단정하기도 쉽지는 않다.
이에 반해 무천의 어른들은 철면피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경찰서장 현구탁은 왕년의 내연녀 이재희를 향해 “보영어머니, 보영이 너무 늦게 찾았습니다. 당시 수사책임자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며 절한다.
빨리 자백시켜 미성년자로 처벌받도록 한 것 아니냐는, 그래서 20년은 받아야 할 형량을 10년으로 줄여준 것 아니냐는 노상철의 추궁엔 “제일 친한 친구 아들이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질렀어. 그런 경우 자네라면 어떤 조언을 했을 것 같나?”고 넘어간다. 그런 오해라면 언제든 환영한다는 듯, 의리 깊은 친구의 행색으로.
과연 그럴까? 내막은 자칫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지 모르는 사건, 혹은 아들 건오가 연관됐을 수 있는 사건을 정우에게 덮어씌워 빨리 종결해버리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래서 제일 친한 친구를 쥐고 흔들어 자신에게 최선의 결과를 끌어낸 건 아닐까? 제 말이라면 증거조작도 불사할 수 있는 부하도 있고.
보영모 이재희 역시 자신의 죄책감을 정우에게 덮어씌우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판이다. 일가붙이처럼 도움을 주었던 정우엄마 정금희(김미경 분)를 제 남편 심동민(조재윤 분)과 더불어 천대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무천가든 주방장 출신으로 이제는 어엿한 무천가든 사장이 된 신추호(이두일 분)는 정우 부 고창수(안내상 분)의 호의 속에 형님 대접을 받아왔다. 사건발생 후 헐값에 무천가든도 인수했다. 그런 그에게 보은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정우모자 내몰기에 혈안일 뿐이다.
박다은과 원조교제한 박형식은 천박한 인간성을 살인으로 이미 드러냈고 사람 좋은 웃음 짓는 예영실도 벌써부터 그 이중성의 일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스터리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그렇게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품고 있어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진진해진다.
그리고 고정우의 독백처럼 “근데 보영이는 왜 하필 폐교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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