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국가대표 선배가 된 설영우(26,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고충 아닌 고충을 고백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현지 시각으로 8일 오후 6시 오만 시브의 알 시브 스타디움에서 오만전 대비 훈련을 진행했다.
한국은 오는 10일 오후 11시(이하 한국시간) 술탄 카부스 종합운동장에서 오만과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2차전 맞대결을 치른다.
첫 승리를 꿈꾸고 있는 홍명보호다. 한국은 지난 5일 안방에서 열린 1차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상대는 FIFA 랭킹 96위 팔레스타인이었지만, 결과는 0-0 무승부였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훼손된 잔디도 도와주지 않았으나 한국의 결정력과 경기력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후반 막판 손흥민의 결정적인 슈팅이 골대를 때리는 등 운도 따르지 않았다.
대표팀은 아쉬워할 틈도 없이 오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5시간에 달하는 고된 여정 끝에 현지 시각으로 7일 오후 12시경 무스카트 공항에 들어서며 오만 땅을 밟았다. 그리고 숙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알 시브 스타디움으로 이동해 적응 훈련을 시작했다. 선수단은 극심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웃음꽃을 피우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두 번째 훈련을 앞두고 측면 수비수 설영우가 취재진과 만났다. 지난해 6월 A매치 데뷔전을 치렀지만, 약 1년 만에 대표팀 붙박이로 자리 잡은 설영우다. 그는 지난 팔레스타인전에서도 왼쪽 수비수로 선발 출전해 손흥민과 호흡을 맞췄다.
세르비아에서 한국, 한국에서 오만까지 강행군을 소화 중인 설영우. 그는 시차 적응 이야기가 나오자 "생각보다 많이 힘들더라. 나도 이번이 처음이다. 발탁 소식을 듣고 한국에 가는 게 너무 좋아서 일주일 전부터 설렜다. 와 보니까 (손)흥민이 형이나 (이)강인이가 진짜 대단하다고 느꼈다. 잠자는 게 어렵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여름 울산 HD를 떠났던 설영우는 대표팀에서 홍명보 감독과 다시 만나게 됐다. 그는 "(홍명보 감독과) 울산에서 몇 년을 함께했다. 여기 와서 또 새롭게 만나게 됐다.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는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감독님은 측면 수비수의 밸런스를 많이 추구하시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공격이든 수비든 한쪽만 특출난 선수보다는 적절히 밸런스 좋은 선수를 선호하신다"라고 말했다.
이어 설영우는 "울산 때부터 거기에 맞는 축구를 하려 노력했다. 대표팀에서는 아직 감독님과 함께한 시간이 길진 않지만, 크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를 또 파악해서 새롭게 잘 적응해야 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홍명보 감독이 개인적으로 해준 이야기도 있을까. 설영우는 "감독님이 명단 발표 전에 세르비아에 오셨다. 그때 인범이 형이랑 같이 뵀다. 감독님께서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좋은 호텔 꼭대기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사주셨다. 항상 배고팠는데 비싼 고기를 먹어서 좋았다"라며 밝게 웃은 뒤 "나중엔 내가 막 복귀했다 보니까 몸 상태는 어떤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셨다"라고 전했다.
어느새 대표팀 풀백 후배들이 여럿 생긴 설영우다. 최우진과 황재원 모두 동생이다. 설영우는 "지난 6월엔 수술 때문에 대표팀에 오지 못했다. 오랜만에 왔는데 어쩌다 보니 후배들이 좀 있더라. 사실 나도 대표팀 경력이 정말 얼마 안 됐는데 후배들이 있으니 '내가 챙겨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내가 챙길 수 있는 부분은 열심히 챙겨주겠지만, 다 능력 있고 경험 많은 선수들이다. 각자 잘 살아남을 거라 생각한다"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는 2년 뒤 열릴 월드컵을 바라보고 있는 대표팀과 설영우. 그는 "대표팀을 보면 많은 포지션에 오래 뛴 선수들이 있다. 그런데 측면 수비는 소집 때마다 변화가 생기고, 나이도 많이 어려졌다. (최)우진이나 (황)재원이는 나이도 어리고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됐다. 경험 면에서는 떨어질 수 있지만, K리그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고 있다. 2년 후 월드컵 때는 더 많이 쌓일 것"이라고 했다.
또한 설영우는 "앞으로는 더 많은 유럽파가 나오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나 혼자다.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후배들에게도 많이 알려주고 하다 보면 나도 뭐 큰 걱정은 없을 것 같다. 다른 선수들보다 내가 제일 걱정"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설영우와 즈베즈다에서 한솥밥을 먹던 황인범이 네덜란드 명문 페예노르트로 이적했다. 두 달 정도 이어졌던 둘의 짧은 동행도 막을 내렸다. 설영우는 "인범이 형이 가게 되면서 이제 진짜 나 혼자 해외 생활이 시작된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지만, 축하도 많이 해줬다. 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잘 된 일이다. 나도 기분 좋다"라며 밝게 웃었다.
물론 황인범이 떠난 자리는 클 수밖에 없다. 설영우는 "인범이 형 이적이 확정되고 아직 세르비아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없었다. 이제 오만전이 끝나고 돌아가게 되면 빈자리가 많이 느껴질 것 같다"라며 "내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인범이 형의 존재가 많이 컸다. 초반엔 언어적인 문제나 팀 문화나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형이 거의 적응시켜놓고 가셨다. 이제는 조금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황인범이 많이 그리울 설영우다. 그는 "운동 가기 전에 1시간 정도 일찍 만나서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했다. 인범이 형 집에 가서 플레이테이션 게임도 많이 하고, 어머님이 한식도 많이 해주셨다. (고)영준이도 불러서 같이 먹고 했다. 영준이까지 다 한 도시에 살아서 그렇게 지냈다"라고 밝혔다.
다만 고영준은 즈베즈다의 최대 라이벌인 FK 파르티잔에서 뛰고 있다. 설영우는 "너무 라이벌 팀이다 보니까 한 경기 하면 조금 어색해질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아시안게임 때부터 워낙 친하게 잘 지냈다. 이번에 갔을 때도 영준이가 많이 챙겨주고 그래서 걱정 없다"라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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