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아빠가 프로파일러라서 좋은 점도 있어. 거짓말을 잘하게 돼!”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극본 한아영 연출 송연화)의 장하빈(채원빈 분)이 3회 예고에서 한 말이다.
연주경찰서 범죄행동분석팀장 장태수(한석규 분) 경감은 최근 불신 지옥에 빠져버렸다. 대화산에서 발생한 시체 없는 살인사건에 이제 고 2된 열 여덟 살 딸 장하빈이 자꾸만 연루되고 있는 판이라서다.
장하빈의 수학여행 중 발생한 그 사건은 여러모로 이상했다. 2리터 가량의 피웅덩이만 발견됐다. 분출혈도 없었고 창고주변에 파다 만 구덩이도 있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다른 곳에서 살해한 시신을 처리하려 한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돌발 상황이 발생했고 범인은 다른 흔적을 지우기 바빠 혈흔 처리를 못한 모양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제 2의 현장으로 추측되는 유기 차량이 발견됐고 누군가 치어서인지 피하다인지 모를 추락 흔적도 발견됐다. 빨간 실가닥과 함께. 아울러 차량 내부는 제 1 현장인 창고에서 없어진 난로 기름을 이용해 전소된 상태였다.
문제는 딸 장하빈의 핸드폰 전원이 그 시각 사건현장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켜졌다는 점. 하빈은 수학여행을 가지도 않았고 불참자 자습에도 나오지 않았단다. 그 하빈은 엉뚱하게 교통사고를 당해 팔에 깁스한 채로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빨간 실가닥은 하빈 가방에 매달린 키링과 같은 재질이었고 유기된 대포차량 동선 속 CCTV엔 하빈과 유사한 체형의 젊은 여성이 퇴원 길 하빈의 옷차림과 흡사한 옷을 입은 채 찍혀 있었다. 현장 인근 기지국에서 수신·발신된 핸드폰 명의자 명단에도 하빈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기차량 대여자는 지하철 핸드폰 절도와 엮여 하빈과 다툼을 벌였던 가출팸의 송민아(한수아 분)였다.
장태수는 딸과 대화할 필요를 느꼈다. “송민아, 만났어? 너 그날 대화산에 갔던 거 다 알아.” 하빈은 일단 버텼다. “무슨 소리야?” 현장 추락으로 인한 부상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겠지. 당시 사고 운전자도 빨간 불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일부러 차에 뛰어들었던 거잖아!” 다시 버틴다. “내가 왜?” 강하게 압박할 필요가 있다. “너 거짓말 할 생각 하지 마. 내가 다 확인했어.”
하빈은 생각했다. 아빠가 이쯤 나오면 수긍하고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눈물 연기쯤도 효과적일 수 있다. 믿지 않으리란 건 안다. 하지만 ‘아빠’란 위치가 강제하는 부담도 있을 테니까.
“맞아. 차에 일부러 뛰어들었어. 죽고 싶어서. 죽고 싶었다고! 아직도 안믿겨. 엄마가 날 두고 자살한 게. 수학여행 가기 싫었어. 가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고 떠들기 싫었어. 근데 이 집에 있는 건 더 싫어.(눈물) 아빠랑 같이 사는 거 너무 힘들어.” 아빠의 죄책감은 충분히 자극한 것 같다. 이제 살짝 방향을 틀자. “송민아 만난 적 없어. 파출소에서 본 게 다야.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내 말 좀 믿어주면 안돼?”
어머니(손숙 분)께서 조언하신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모른 척 해라. 암만 그래도 새끼 말은 믿어줘야지.” 그러게요. 어머니. 그러게요. 그런데.. “믿고 싶어요. 저도...근데 정말 모르겠어요.”
장태수의 본심이다. ‘믿고 싶은데 모르겠는’ 딸. 이혼한 아내 윤지수(오연수 분)가 1년 전 자살하면서 다시 함께 살게 된 딸이다.
장태수와 윤지수의 이혼은 장하빈으로부터 비롯됐다. 하빈이 어린 시절 가족 나들이를 떠났을 때 하빈은 동생 하준을 데리고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고 하준은 벼랑에서 떨어져 죽어버렸다. 당시 하빈은 옷 여기저기에 피를 묻힌 채 발견됐었다.
2회까지에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어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장태수는 하빈이 하준의 죽음과 연관돼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추궁했었다. 윤지수는 그런 아빠 장태수로부터 딸 하빈을 격리시킬 필요가 있어 이혼을 감행했었다. 그렇게, 장태수에게 장하빈은 아주 오래 전부터 ‘믿고 싶은데 모르겠는’ 딸이었다.
한편 송민아의 계정에서 다이어트 주사제 구매 기록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 주사제엔 당뇨병 환자나 고도비만 환자의 치료에 쓰이는 성분 리라글루티드가 포함돼 있다. 대화산 현장 피웅덩이 혈흔에서 발견된 바로 그 성분. 피해자는 송민아일 확률이 높아졌다.
송민아가 포함된 가출팸 리더 최영민(김정진 분)이 잡히고 송민아 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박지연도 잡힌다. 그 박지연은 장태수에게 송민아의 핸드폰을 장하빈이 훔쳤고 핸드폰을 돌려받기 위해 장하빈을 만나러 간다고 나간 것이 송민아를 본 마지막이라 증언한다. 하빈의 가방에서 태수가 압수한, 그리고 하빈이 되훔쳐간 바로 그 핸드폰 이야기다.
박지연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파출소에서 마지막으로 봤다는 딸아이의 말은 거짓인 셈이다. 그러던 중 딸 하빈이 경찰서로 찾아왔다는 선배의 전언. ‘그럴 리가?’ 싶어 뛰어가 보니 성의없이 쓰러져있는 속옷 가방이 보이고 책상 위의 사건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빨간 실’에 대한 기록도. 바로 그 하빈의 책가방에 매달려 달랑거리던 키링과 같은 소재의 빨간 실에 관한 보고.
서둘러 집으로 달려간 태수는 하빈 가방에서 그 빨간 키링이 사라졌음을 확인한다. ‘증거인멸까지?’
태수가 물었다. “송민아, 니가 죽였어? 대답해!” 어쩐지 익숙한 상황. 동생 하준이 죽었을 때, 아빠가 다그쳤었다. 그때 어린 하빈은 분명히 말했었다. “내가 안죽였어!” 그 아빠는 이번에도 어떤 확신을 가지고 묻는다. “송민아, 니가 죽였어?”
그렇게 의심스럽단 말이지? 그럼 제대로 된 불신지옥에서 허우적대 보시던가. “하준이 말야. 정말 사고였을까? 엄마는? 엄마가 정말 자살했다고 생각해?”
하빈의 말에 장태수가 혼란에 빠진 사이 벨이 울린다. “띵동” 사건현장 기지국 통화내역 확인에 나선 오정환 팀장이 찾아왔다. 장하빈을 딸로 대할지, 피의자로 대할지 결정할 장태수의 시간은 그렇게 초단위로 줄어들고 있었다.
장하빈은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기꺼이 좌석을 양보하는 아이다. 핸드폰 절도를 남 일로 치부하지 않는 정의로운 아이다. 송민아, 박지연을 쫓다보니 가출팸의 실상을 목격하고 송민아 등을 구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이들과의 연결고리를 남겨두기 위해 송민아의 핸드폰을 훔친 건 아닐까?
착취의 주역 최영민이 가출팸 실상을 폭로하려는 송민아를 죽인 건 아닐까? 장태수가 추론한 ‘돌발상황’이 사건 현장에 등장한 장하빈의 존재 아닐까?
장태수는 딸을 의심하기 전에 적어도 교통사고로 위장할만큼의 부상, 추락으로 인한 부상을 당한 장하빈이 송민아일 것으로 추정되는 시체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그게 가능은 한 건지를 먼저 따져봤어야 되지 않을까?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보아 놓고는 증거를 따라왔다고 강변하는 중은 아닐까. 똑같은 위치에 놓인 똑같은 증거라도 범행이 아닌, 범행방지를 위한 노력을 증거할 수도 있는 일인데 말이다.
/zaitu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