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드렸던 선수로 남고 싶어요" 축구화 벗는 '전설' 구자철, 현역 은퇴...이젠 제주 유스 어드바이저로 [일문일답]
OSEN 정승우 기자
발행 2025.01.14 11: 33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멤버 중 한 명'이면 충분할 것 같다."
제주SK는 1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구자철의 현역 은퇴 기자회견 및 제주SK FC 유스 어드바이저(Youth Advisor) 위촉식을 진행했다.
구자철은 지난 2007년 제주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2011년 VfL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고 1. FSV 마인츠, 아우크스부르크 등을 거치면서 독일 무대를 경험했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구자철 현역 은퇴 기자회견 및 제주SK 유스 어드바이저 위촉식이 진행됐다.구자철은 2010년 제주의 준우승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 활약을 토대로 이듬해인 2011년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맹활약을 펼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 남자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끌기도 했다. 2022년 다시 제주로 돌아온 구자철은 팀의 기둥 역할을 자처해왔다.구자철이 미소 짓고 있다. 2025.01.14 / soul1014@osen.co.kr

8년간 독일 무대를 누빈 구자철은 2019년 카타르의 알 가라파 SC로 이적했다. 이후 알 코르 SC를 거쳐 2022년 제주로 복귀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서도 76경기를 뛰면서 올림픽, 아시안게임, 아시안컵, 월드컵을 경험했고 주장까지 맡았던 구자철은 14일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행사에 나선 구자철은 "우선 저도 사실 은퇴를 한다고 마음을 먹고 이렇게 준비하며 홀가분하고 더 빨리 세상에 나와 한국 축구의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감사하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구자철은 이날 제주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위촉됐다. 구자철은 유럽의 안정적인 유소년 시스템을 구단에 알리고 유소년 육성 관련 코칭 스태프와 소통, 구단 팬 밀착 마케팅 등 활동에 나서게 된다. 
구자철은 "은퇴를 수년 동안 준비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은퇴 후에도 한국 축구를 위해 제가 받았던 사랑과 제가 누렸던 경험들을 통해 우리 세대들은 간과하지 말자. 한국 축구에 있어 자기 역할을 해내자라는 생각들이 확고해 수년동안 준비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세대가 변하고 있지만, 얼마나 빠릴 융화되느냐가 중요하지만, 독일 시절 유소년에 심혈을 기울이고 아우크스부르크 시절 뮌헨을 왔다갔다 하며 프런트 일에 대해 배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도 저를 나아주고 키워준 제주에서 저를 유소년 어드바이저 직책을 줬기에 서두르지 않게, 매듭이 있는 일을 해보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다음은 구자철과 일문일답.
많은 일들이 생각날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축구화를 신고 있을 때가 아니다.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따고 단상에 올라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상식에 올라가 대한민국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메달을 걸었을 때 기억이 많이 난다. 
올림픽 1년 전 한일전 패배 후 다시는 한일전에 패하지 않겠다고 메모를 적었다는 일화가 있다. 지금은 정말 축구화를 벗게 됐다.
-2011년 8월 11일 삿포로였다. 제가 유럽에 진출한 뒤 치른 경기였다. 비행기를 볼프스부르크에서 하노버 갔다가 프랑스를 들렸다가 인천에서 삿포로로 이동했다. 경기 이틀 전에 도착했다. 정말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몸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과는 0-3 패배였다. 국민들, 대선배들부터 이어온 '한일전은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너무도 부끄러웠다.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한 채 '다음 한일전에서 지면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필사즉생의 마음으로 경기를 들어갔다. 
그런 경기가 있다. '진다'는 생각이 안 들고 '내 앞을 가로막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기가 있다. 인터뷰에서 패배의 부끄러움에 대해 반성하고 기억을 통해 이겼다는 인터뷰를 기억한다. 
대표팀에서 기억나는 골이 있다면.
-첫 골은 2009년 이집트 청소년 월드컵 미국전 페널티 킥이었다. 팔을 벌리고 세리머니를 했다. 그 전율은 '이 기분을 느끼기 위해 과정의 고통을 이겨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2011년 아시안컵에서 호주전 골이다. 이유는 첫 경기 바레인전에서 골을 넣었을 때는 그저 좋았지만, 바로 다음 경기에서 두 경기 연속 골을 넣었을 때의 짜릿함, 공을 잡고 원하는 대로 터치가 돼 구석으로 공을 찼을 때의 짜릿함은 아직도 발끝에 남아 있다. 
마지막 하나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우즈베키스탄과 할 때(2016년 11월 15일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홍)철이가 크로스하고 (김)신욱이가 떨궈주고 제가 슈팅해 골을 넣은 기억이 있다. 이상하게 그 골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영상을 돌려보며 많은 골을 기억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기억나는 세 골은 이 세 골이다. 
한일전 골도 이야기하고 싶다. 제가 뛰었던 메이저 경기에선 골을 안 넣은 적이 없다. 아시안게임, 아시안컵, 월드컵 등 대회에서 모두 득점했다. 올림픽 경기에서는 골이 자꾸 안 들어갔다. 첫 경기 두 번째 경기에서 모두 골대를 때렸다. '한 골도 못 넣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전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 축구 메이저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이상한 욕심에 사로잡혔다. 우리나라 축구가 세계 대회에서 결승에 올라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브라질전에서 필요하다면 내가 골을 넣어 결승에 가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골이 안 들어갔다. 다음에 치른 한일전, 아픔과 부끄러움을 털어낼 수 있는 골을 넣었다.
선수 생활 중 아쉬웠던 점은.
-질문에 말씀 드리고 싶은 그 아픔과 속죄, 아쉬움이 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것 같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다. 아쉬움을 떠나 그 땐 제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사실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 프로필엔 '대표팀 최연소 주장', '월드컵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온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너무 어렸고 돌이켜보면, 저는 축구선수란, 국가대표 선수란,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란,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부족했던 시기였다. 그 경험을 통해 많이 성장했지만, 저의 부족함 때문에 그 월드컵에서의 결과가 국민들에게 조금은 아쉽고...
월드컵이라는 대회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 덕을 볼 수 있는 분들에게 너무 책임감이 없었다. 죄송하다. 말이 길어지는데, 제주 후배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프로 선수는 사회에 어린이들에겐 꿈이 됐으면 좋겠고 배울 수 있는 해동, 말을 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게 프로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다'라는 말을 한다. 제주 구단이 제주도 전반의 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모든 이들의 꿈과 희망,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월드컵은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그 부분이 부족했다. 아쉬웠던 기억 하면 2014년을 담아두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축구에서 구자철, 이청용, 기성용은 큰 족적을 남긴 선수다. 셋 중 제일 먼저 은퇴한다. 세 선수 사이에 나눈 이야기는.
-청용, 성용이는 저에게 있어 큰 힘이 되는 친구들이다. 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하는 친구다. 셋의 단톡방이 있다. 사소한 이슈까지 챙긴다. 은퇴 이야기를 하니 거두절미하고 굉장히 아쉬워하고 고생했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 너무 고맙다. 성용이, 청용이를 같은 선수로서 존경하며 그들의 장점을 보고 많이 따라가려 노력했다. 
너무도 훌륭한 친구, 선수였고 너무 성실했다. 한국 축구를 사랑했다. 제가 흔들리는 순간에도 두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잡을 수 있는 친구였다. 생각도 많고 말도 많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도 크다. 두 친구가 저보다 크면 크지 작지 않다. 
은퇴 후의 작은 컨설팅도 해줬다. '여러 오퍼가 있어도 하나만 해라' 등 조언도 해준다. '네가 은퇴를 먼저 하니 잘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해줬다. 친구들에게 부끄러움 없는, 그들이 은퇴를 하기까지 잘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선수생활 내내 고마웠다. 영광이었다. 
세 선수의 미래 계획은.
-성용이는 공식적으로도 유럽에 돌아다니며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다. 행정 수업도 같이 받는다. '지도자 할거야?'라고 물어보면 저희가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가 있었다. 기회 있을 때 지도자, 행정 자격증 모두 따자. 질문하고 배우고 공유하자고 했다. 톡방을 보면 성용이가 유럽에 다녀온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전반적으로 '뭘 하겠다'며 그들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저는 A와 P자격증이 남아 있다. 행정적으로도 저희 제주를 위해 경험을 공유하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욕심내 서두르다가 그르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저희의 의견이다.
한국 축구에 긍정적인 일들을 조금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혼자의 독단이라면 확률적으로 일을 가르칠 가능성이 커지겠지만, 저에겐 기성용과 이청용이 있다. 큰 일을 해낼 친구들이다. 열심히 해보겠다. 
독일에서도 오래 활동하며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유스 어드바이저로서 제주에 기여하고 싶은 부분은.
-급하게 뭘 바꿀 생각은 없다. 기존에 한국에서 일하는 분들의 존중과 존경심이 있다. 제가 우월하거나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올해 1년은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도움주는 역할을 하면서 제가 할 일이 늘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제가 '이걸 하자. 이걸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시기는 아니다. 그래서 제가 기성용, 이청용보다 1년 정도 일찍 은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가 보고 아는 것과 현장의 어려움은 다르다. 저는 아직 현장의 어려움은 모른다. 거두절미하고 유소년 시스템은 우리나라가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관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매듭지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지혜롭고 현명하게 해보겠다. 
K리그 데뷔 후 유럽을 거쳐 다시 K리그로 돌아와 은퇴했다. K리그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 부분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K리그에서 뛰었다. 돌아온 시기는 2022년이다. 12년 만에 돌아왔다. K리그에서 배출하는 유럽 선수도 많아졌고 K리그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행정적인 부분도 당연히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축구 시장이 굉장히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가 왔던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많다고 생각한다. 저는 어떻게 이 축구판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설레서 잠을 못 잔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줄 수 있는 것도 많고 잘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그만큼 한국 축구가 조금 더 발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저희는 긍정적인 부분을 보고 이야기하면 '훌륭한 인프라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변해야 하는 것도 많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잔디를 바꿨으면 좋겠다. 잔디의 중요성이 기본이다.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 구단에도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도 저희 구단은 K리그에서 좋은 편이다. 구단에 감사하다. 잔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부상, 팬들의 즐거움을 위해 힘써 주셨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잔디는 파고들어서 제도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날씨가 더워서 잔디가 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핑계로 방치할 수 없다. 선수들, 선수들을 보러 오는 팬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잔디로 인해 두 그룹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 바꿔야 한다. 
2014 월드컵 이야기를 했다. 지금 대표팀을 보며 느끼는 것은. 구자철의 리더십과 손흥민의 리더십은 어떻게 다른지.
-흥민이의 리더십은 제가 주장으로서의 리더십은 보지 못했다.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데 제가 특별히 말할 건 없다.
제가 주장인 것은 워낙 오래전이다. 최대한 선수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선수들이 부담에서 자유롭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선수들이 부담이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많이 노력했다. 
이 시기에 은퇴를 결정한 이유. 제2의 축구인생 꿈은.
-제 근육이 버티질 못했다. 무릎, 발목도 그랬다. 예전엔 운동을 하다가 근육이나 관절이 다쳤을 때 '이 정도 쉬면 이 정도 회복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한국에 들어와서는 회복 기간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반복됐다. 그게 은퇴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어야겠다.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저를 발굴해주고 키워준 제주에서 은퇴하는 것이 꿈이었다. 
은퇴 후의 꿈은 아직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다. 아직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은퇴하는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저보다는 여기까지 저를 만들어준 저희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결혼을 일찍 했다. 결혼을 할 때 아디다스에서 싫어했다. 이 축구화를 오래 신었는데, 그 주인공, 제 아내에게 너무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독일에서 첫째를 낳고 외국에서 대표팀 경기 하러 가면 한 달에 한 번씩 자리를 비웠다. 외국에서 홀로 애들 키우면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줘 너무 고맙다. 옆에서 도와준 처제도 고맙다.
저에게 이야기를 한다. 가정이 있다면 다 그럴 것 같다. 남자는 아무거나 먹고 아무데서나 자도 살 수 있다. 하지만 가정이 생기면 책임감이 생긴다. 가족에게 너무 고맙다. 유년기 때 키워준 고모한테도 너무 감사하다. 저한테까지 오지 않아도 상관 없을 정도로 가족에게 너무도 감사하다.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힘이다. 
축구화를 벗고 어드바이저로 제2의 인생이 시작한다. 이 기자회견을 보고 있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프로 선수로 성장하기 위한 조언.
-제주에 입단하라. 농담이다. 다 똑같다. 목표를 정해야 한다. 전 중2 목표가 U-20 청소년 대회 출전이었다. 백지훈 형이 공항 인터뷰 한 것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 청소년 대표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몇 년을 뛰었다.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도 갖고 싶은 목표를, 책상에 앉든, 저처럼 별을 보든, 정해야 한다. 동기부여는 행동의 차이를 만든다. 명확한 목표를, 할 수 있는 목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꿈을 그릴 수 있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저희 제주 유소년은 좋은 선수들이 오고 발굴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최근 주목하는 선수는.
-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 (박)지성이 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갈 때 놀랐는데,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니 정말 멋있었다. (이)강인이가 PSG에 가는 것, (김)민재가 뮌헨에서 뛰는 것을 보면서 후배들의 꿈을 키워주는 것 같다. 눈여겨 보는 선수는 이제 찾아보겠다. 우리나라 수준이 높아졌다. 후배 선수들이 꿈을 크게 갖는 원동력이 됐다. 단지 해외 진출에 목표를 둘 것이 아니라 더 큰 클럽에서 뛸 수 있다는 자신감과 큰 클럽에서도, 하다못해 누군가가 '내 꿈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야'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많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도전하고 K리그에서 도전했으면 좋겠다. 
제주 유스 어드바이저로서의 목표는.
-제주 소속이기에 제주 팀 선수 구성에 결실을 맺는 것이 목표다.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 그 선수가 꿈을 찾아 떠날 때 재정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기본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 이 목표에 충실해 선수를 발굴하고 그 선수의 성장을 도우면서 어드바이저 역할을 해야 한다. 1군에서 자리 잡고 1군에서도 성장해 한국 축구의 대들보가 되고, 유럽으로 가고...여러 일들,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목표일 것 같다. 
시청자 질문
2024년 강원의 양민혁과 제주의 준우승을 이끌었던 20대 초반의 구자철, 누가 더 위냐.
-양민혁. 토트넘이다 어떻게 이기냐. 양민혁 양민혁. 양민혁 화이팅.
해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이 많다. 독일에서 9년, 중동에서도 활약했다. '해외에 갈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후배들에게.
-해외에 갈 것이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박)지성이 형이 계속 동기부여가 됐다. 기성용, 이청용도 동기부여가 됐다. 성용이가 저보다 6개월 먼저 갔다. 제가 가고 싶은 곳을 그들이 먼저 갔다. '가고 싶다'에서 '가야 돼'로 바뀌는 시기였다. 
구단에도 해외 진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즌 종료 후엔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에이전트를 통해 적극적으로 움직여 결실을 맺었다. 명확히 생각을 정리해 목표를 정해두고 잘 해냈던 것 같다. 비슷한 또래에 대한, 스스로 동기부여를 줘야 한다. 얼마나 이루고 싶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친 듯이 하고 싶다면 몸이 움직이고 생각이 움직인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자꾸 하고 목표 기준치 설정이 몸을 움직이게 한다. 기술적으로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게 그건 몸으로 부딪히며 이야기해야 한다. 
구자철은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멤버 중 한 명'이면 충분할 것 같다. '열심히 했던 선수'. '최선을 다했던 선수'. 
제 마음속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2014년엔 아픔을 드렸지만, 2012년엔 즐거움을 드렸던 것 같다. 즐거움을 드렸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추억이 많다. 긍정적이고 즐거운 이미지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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