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김태형 감독이 선수들에게 이따금씩 던지는 말 한 마디는 선수들에게 강하게 와닿는다. 때로는 독설로 선수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독설도 관심이 있기에 가능한 법. 김태형 감독 체제에서는 물론, 1군에 데뷔조차 하지 못한 5년차 투수 이병준(23)은 김태형 감독의 ‘독설’을 들었다.
롯데는 지난해 정규시즌을 모두 마무리 짓고 마무리캠프를 치르는 과정에서,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던 KIA 타이거즈와 연습경기를 펼쳤다. 롯데는 윤동희 손호영 황성빈 나승엽 등 주축 타자들을 대거 내세웠다. 대신 투수진은 젊은 선수들 위주의 1.5군급으로 꾸려졌다. 이때 이병준도 포함됐고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실망스러웠다. 이민석 박준우 진승현에 이어 4번째 투수로 7회에 올라온 이병준은 선두타자 나성범을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했지만 김선빈과 변우혁에게 연속 볼넷과 폭투를 범하면서 이닝을 매듭짓지 못하고 강판됐다. 뒤이어 올라온 송재영이 한준수에게 스리런 홈런을 얻어 맞았다. 이병준은 ⅓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1군의 김태형 감독 앞에서 처음 자신을 보여줄 수 있었던 자리에서 실망만 남겼다. 김태형 감독은 축 쳐진 이병준에게 그만의 방식으로 한 마디를 툭 건넸다. “넌 2군 1선발 해라”라며 이병준을 향해 독설을 날렸다. ‘웃픈’ 상황에서 날아온 독설이었는데, 이병준은 그래도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저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넌 2군 1선발 해라’라는 것이었다. 사실 웃으려고 하면 웃긴 말인데, 그때는 웃을 수 없었다. 당연히 마음이 안 좋았다”라면서도 “하지만 솔직히 그래도 감독님과 처음 말 한마디라도 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 좋았다. 어쨌든 2군에서 저의 좋았던 기록을 한 번이라도 봐주셨다는 의미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라고 웃었다.
개성고를 졸업하고 2021년 신인드래프트 2차 7라운드 전체 61순위로 지명된 이병준은 올해 2군에서 두각을 나타낸 투수 중 한 명이었다. 올해 17경기 49⅔이닝 5승 무패 평균자책점 3.44, 19볼넷, 51탈삼진의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 자체만 놓고 봐도 훌륭하다.
하지만 2군 시즌 막판, 선발 투수로 전향한 뒤 성적은 더 좋다. 선발 전환 이후 6경기에서 31이닝을 던지며 3승 평균자책점 1.16의 성적을 남겼다. 39탈삼진을 기록하며 볼넷은 5개 밖에 내주지 않았다. 이닝 당 1개가 넘는 탈삼진 비율을 유지하면서 제구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6경기 모두 5이닝 이상을 소화한 것도 고무적.

이병준은 “올해 1군을 결국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프로 입단한 뒤 가장 좋은 시즌이었다. 그 전에는 잘하고 싶어도 못 했던 순간들도 많고 마음만 앞섰지 결국 보여준 건 하나도 없었다”라며 “그래도 2024년 한 해 동안 그래도 저를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는 시즌이었지 않나 생각한다”고 되돌아봤다.사실 이병준은 제구가 썩 좋지 않았던 투수였다. 개성고 3학년 시절부터 제구 난조가 두드러졌다. 7경기 12⅔이닝을 던져서 볼넷 17개, 사구 7개를 헌납했다. 한때 1차 지명 후보로도 꼽혔던 선수가 7라운드까지 지명 순위가 밀린 이유이기도 했다. 2021년 프로 첫 시즌도 2군에서 11이닝 동안 11개의 볼넷을 내줬다. 결국 2022시즌을 마치고 현역으로 군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6월까지도 아쉬움이 짙었다.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약 두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은 재활군으로 잠시 내려갔다. 아픈 건 아니었다. 몸은 괜찮았지만 공을 많이 못 던졌다는 판단 아래, 꾸준하게 공을 던지면서 감각을 찾는 과정을 거쳤다. 돌이켜 보면 이병준의 터닝포인트였다.
그는 “경기를 많이 못 나가서 공을 많이 못 던졌다. 몸은 괜찮았는데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펜에서 공을 던졌다”며 “사실 공 자체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국 마운드에서 제 공을 못 던졌다. 심적으로 쫓기고 힘들었다. 재활군 김현욱 코치님과 얘기를 많이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현욱 코치는 이병준에게 ‘팩트’를 잘라 말했다. 이병준은 “코치님께 제 얘기를 하자, ‘그건 당연히 훈련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라고 딱 가슴에 꽂히게 말씀을 해주셨다”라고 전했다.김현욱 코치는 이병준에게 믿음을 심어줬다. “코치님께서 ‘나만 믿고 하루에 공을 400~500개 정도 던져보자’고 하셨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게 맞는 건가 싶었는데 일단 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믿을 사람이 코치님 밖에 없었다”라며 “그래서 남들 다 밖에서 훈련하고 경기할 때 저는 실내에서 그물망만 보고 매일 공을 던졌다”라고 웃었다.
김현욱 코치와 함께하면서 많은 조언들도 가슴에 새겼다. 그는 “코치님이 ‘공을 많이 던져서 준비하고 1군에서 한 번이라도 던지고 야구를 그만둘래, 아니면 몸은 좋은데 공도 안 던지고 야구를 못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만둘래’라고 말씀하시더라”라며 “그래서 저는 죽도록 던져서 1군에서 한 번이라도 던지고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코치님 말씀에 많이 바뀌었다”라고 했다.

2군 선발 투수라도 이병준은 마음 가짐을 헛되이 하지 않았다. 자리 잡기 힘들었을 때를 생각하면서 “저를 믿어준다는 것 자체가 저를 바꿔준 것 같다. 저는 뒤쳐져 있었고 경기를 못 뛰고 밀려나 있던 선수였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더라”라며 “하지만 선발 투수로 투입된다는 것은 저를 믿어준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투수로 믿어준 것이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던졌다. 저를 믿어주니까 더 잘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고 매 경기 쌓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좋아졌다”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미야자키 마무리캠프부터, 올해 1군 스프링캠프까지 연달아 참가하는 이병준이다. 광주에서는 독설을 날렸던 김태형 감독은 미야자키에서 만났을 때는 “와일드한 폼을 살려서 잘 던져봐”라고 따뜻하게 조언을 건넸다고. 이제 앞으로 목표는 1군에서 보여주고 눈도장을 찍는 것. 그는 “일단 빨리 적응하고 하나라도 더 배운다는 자세로, 그리고 제가 갖고 있는 강점을 잃지 않고 눈도장을 찍으면서 끝까지 살아남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고교 3학년 시절부터 꼬였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가고 있다. “이제 한 계단 올라섰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이병준이다. 118번이었던 등번호는 이제 45번으로 바뀌었다. 육성선수에서 등록선수로 거듭났다는 의미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처럼 팔 각도도 낮췄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라며 등번호를 45번으로 한 이유도 설명한 이병준이다. 이병준은 과연 1군 5선발 구도를 뒤흔들 복병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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