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JANG’ 송일국이 삼둥이와 함께 한 추억을 떠올렸다.
10일 방송된 KBS2 ‘세차JANG’에서는 장민호와 장성규가 엑스디너리히어로즈 주연과 손님들을 맞이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만국기가 걸린 세차장에 장민호와 장성규는 학창시절 추억에 빠졌다. 장민호는 “내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였고, 한 반에 50명 정도 됐다. 졸업사진은 흑백이다. 그렇지만 소학교 출신은 아니다”라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아르바이트생으로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멤버 주연이 합류했다. 외국인 같은 비주얼로 혼란을 준 것도 잠시, 본투비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반전을 안겼다.

첫 번째 예약자명 ‘밀리어네어’의 정체는 모델 신현지였다. 다수의 명품 브랜드 모델로 활동 중인 신현지는 “비행기를 많이 타서 마일리지가 밀리언에 가깝다. 미주와 유럽을 많이 가다보니 장거리라 그런지 더 빨리 쌓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현지의 차 안에서는 무사고를 기원하는 팥부터 짧은 출장에 사용되는 캐리어가 발견됐다. 캐리어에는 정말 작은 사이즈의 스키니진과 힐이 나왔다. 또한 여권용 사진에서는 배우 포스가 느껴졌고, 이에 연기 활동에 대해 묻자 신현지는 “영화 ‘탈주’에 특별출연을 했는데 대사가 없었다. 대사를 못 외워서 연기가 어려운데 ‘박하경 여행기’에도 나왔다”며 간단한 대사를 소화했다.
신현지는 월드클래스로 봉준호, 손흥민, 방탄소년단, 박재범이라고 못을 박으면서도 모델 중에서도 일 제일 많이 한 50명 중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이 행보를 7년 이상 이어가면 ‘Icon’에 오르고 여기에 발을 살짝 걸쳤다는 신현지는 브랜드마다 원하는 워킹이 다르다면서 직접 선보여 감탄을 자아냈다. 신현지는 “모델의 조건은 깡이다. 오디션을 보면 10초 안에 판가름이 나서 그 사이에 얼마나 자신감 있게 보여주느냐가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닉네임 ‘1958’은 ‘일국오빠’ 별명의 배우 송일국이었다. 송일국은 “삼둥이 나올 때는 아내가 인천에 근무할 때고 지금은 발령지에 따라 옮겨 다닌다”고 말했고, 장민호는 “그 아파트를 송일국 아파트라고 한다. 이 분이 그 아파트 값을 많이 올려놨다”고 이야기했다. 아내가 판사인 송일국은 “판사랑 사는 거 힘들다. 법대로 다 해야 한다. 그래서 차 썬팅도 진하게 못한다. 연예인 차 중에서는 제일 밝을거다”라고 토로했다.
송일국은 취미가 테이블 웨어라며 각국을 여행하며 모은 냅킨링 등을 공개, “딸이 있었다면 이런 것도 잘 사용했을텐데”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차 안에는 어린 삼둥이 사진이 많았고, 송일국은 “아이들이 6학년이 되니까 정신이 조금 힘들어진다. 어른들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 거 같다. 대한이가 ‘어른들의 이상한 점’이라며 어른의 잘못인데 왜 내가 혼나야 하는지를 편지에 썼다. 많이 반성했고, 고치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고 설명했다.

장민호는 삼둥이와 함께 방송에 나와 후회한 적 없냐고 물었다. 송일국은 “방송을 하는 게 아이들에게 좋을까 말까 고민이 컸다. 그런데 그때가 제일 예쁠 때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그때가 그리워서 찾아본다. 그때는 몸이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게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그런 영상 가지고 있는 부모가 없다”고 돌아봤다.

송일국은 라면을 15개까지 먹어봤다며 남다른 먹성을 자랑했다. 삼겹살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간 송일국은 “나는 원래 하나만 가지면 딸이었다. 딸 쌍둥이 낳아서 ‘우리’, ‘나라’로 짓고 싶었다. 아내가 애들 낳을 때 정말 죽다가 살아났다. 장모님이 보시더니 더 이상 내 딸한테서는 안된다고 하셨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송일국은 매년 장모님으로부터 속옷을 선물 받는다며 “아내 만나고 할 때 찍은 영화가 ‘작업의 정석’이었다. 바람둥이 역할이어서 반대가 엄청났다. 하얀색 속옷을 선물하시는데 바람 피지 말라는 뜻 같다”고 말했다.
또한 송일국은 “아내가 나랑 연애할 때 궁합을 봤는데 ‘남편보다 자식 운이 좋다’고 하시더라. 그때는 몰랐다고 하는데 삼둥이 낳고 하니 그 사람 용하다고 하더라”, “아내가 법원에 있을 때 밴드부 회장이었다”고 말했다. 장민호는 “슬기로운 법원생활이 나왔으면 한다”고 호응했고, 송일국은 아내가 노래에 진심이라고 설명했다.

송일국은 세차처럼 깨끗하게 씻겨져 나갔으면 하는 기억에 대해 “10대 후반부터 공채 합격할 때까지의 10년을 지우개로 지우고 싶다. 가장 암울했던 시기다. 미대에 계속 지원했는데 계속 떨어져서 방황도 많이 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어려운 기억들이 배우 하면서 도움이 되더라. 표현하는데 있어 밑천이 되어서 나쁘기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