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김소운의 희귀 아동잡지 『아동세계』와 『목마』, 영인과 번역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다…근대서지총서의 일환으로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5.04.07 16: 01

[OSEN=홍윤표 선임기자]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어린이 잡지는 소파(小波) 방정환(1899~1931)이 주재했던 『어린이』였다. 1923년에 창간, 일제의 혹독한 검열을 견뎌내며 1935년 3월까지 모두 122책이 발행됐다. 『어린이』는 해방 이후 1948년 5월에 123호로 속간돼 1949년 12월에 이르기까지 통권 137호로 장수했다.
엄혹한 시절, 『어린이』말고도 수필가이자 일본어 번역가,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김소운(1907~1981)이 발행했던 『아동세계』와 『목마』 같은 어린이 잡지는 여태껏 그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근년 들어 근대서지학회(회장 오영식)의 꾸준한 발굴 노력으로 마침내 최근 영인과 번역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김소운의 아동잡지’ 『아동세계』, 『목마』 번역본과 영인본(민속원 발행)은 근대서지학회의 서지총서 14로 발간됐다. 민속학연구 권위자인 김광식 한국연구재단 교수와 교토부립고교 일본어교사를 역임했던 나카이 히로코가 손잡고 엮어낸 것이다.

‘목근통신(木槿通信)’이라는 수필로도 유명한 김소운은 1934년부터 1936년까지 『아동세계』와 『신아동』, 『목마』 등의 아동잡지를 간행했으나 현재 이들 자료의 실물을 찾아보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김광식 교수는 “국내에서는 『신아동』만은 온전히 확인할 수 있으나 『아동세계』와 『목마』는 확인할 수 없기에 이번에 일부나마 그 내용을 소개하게 됐다”면서 “편자들이 확보한 『아동세계』제2권 1호(통권 3호,1934년 9월)와 『목마』 1(1935년 12월), 2(1936년 5월), 3호(1936년 6월),별책 월보(타블로이드판)를 함께 묶어 펴냈다”고 설명했다.
잡지 원문 및 별책 월간 소식지의 영인과 함께, 일본어 원문을 한국어로 번역해 별도로 묶었다. 번역문에도 원문 삽화를 함께 수록했다.
김광식 교수는 “이번 총서에 선뜻 소장자료를 제공해주신 나카이 히로코 선생님께 감사드린다.”면서 “결호가 많은 부족한 자료이지만 아동문화와 잡지 연구자에게 참고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 처음부터 김소운 주재 잡지에 관심을 갖고 근대서지 총서로 발간해주신 오영식 근대서지학회 회장님과 홍종화 민속원 사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잡지 영인 발간 소회를 밝혔다.
『마이동풍첩(馬耳東風帖)』(1952년),『삼오당잡필(三誤堂雜筆』(1955년)같은 수필집을 펴냈던 김소운은 회고록 『물 한 그릇의 행복』(1968년)에 수록한 ‘부러진 목마(木馬)’라는 글 속에 『아동세계』와 『목마』를 발간하기까지의 경위와 숱한 난관을 겪으며 어렵사리 잡지를 꾸려냈던 속사정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남산 공원에서 어린이 놀이터를 내려다볼 때마다 나는 조국의 해방, 조국의 독립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재확인한다. 거기서 노는 어린이들의 활발하고 싱싱한 모습…, 오늘 절망에 허덕이는 이, 굶주린 이가 있다더래도 조국의 독립만은 거짓이 아니오, 내 나라의 어린이들이 이렇게 기운차게 무럭무럭 자라 가고 있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김소운의 술회는 “악전 고투 6년에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인쇄비, 용지 대금을 위시한 7만 원의 부채(당시 잡지 한 권 가격 9~10전)와, 총독부 기밀비로 잡지를 낸다는 터무니없는 누명뿐이었다”는 한탄으로 남았다.
『아동세계』는 3만 부 내지는 4만 부, 『목마』도 1, 2만 부를 간행했다고 하는데, 요즘 기준으로 봐도 엄청난 발행 부수였다. 그럼에도 실물이 거의 없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김광식 교수의 주도로 이 잡지가 실체를 드러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