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이라는 리그 정상급 좌완 필승조를 보유한 두산 베어스가 좌완 대기근을 겪을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김호준을 4연투시키는 고육지책까지 써야했던 두산이 42세 방출생에게 1억 원이 적힌 계약서와 함께 긴급 SOS를 요청했다.
두산 베어스는 지난 17일 “왼손 불펜진 뎁스 강화를 위해 투수 고효준(42)과 총액 1억 원(연봉 8000만, 인센티브 2000만)에 계약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두산이 무직 신분인 42세 베테랑 투수를 깜짝 영입한 이유는 좌완 대기근의 시대가 찾아왔기 때문. 두산 이승엽 감독은 당초 지난해 프로야구 좌완 최연소 20홀드(22홀드)를 해낸 이병헌을 필두로 김호준, 박지호 등으로 좌완 불펜진을 구성하는 플랜을 세웠다. 그러나 박지호가 허리를 다쳐 이탈한 뒤 이병헌마저 장염에 이어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는 악재를 맞이하며 계획이 무산됐다. 13일 말소된 이병헌은 8경기 1홀드 평균자책점 5.79에 그쳤다.
이병헌의 예상치 못한 부진으로 자연스럽게 또 다른 좌완 김호준의 부담이 가중됐다. 김호준은 2018년 두산 육성선수로 입단, 8년차인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투심을 장착해 사령탑 눈도장을 찍었는데 좌완 필승조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다가 4연투 논란에 휩싸였다. 9일 잠실 한화 이글스전부터 12일 LG 트윈스전까지 나흘 연속 마운드에 오르는 투혼을 펼쳤다. 이에 프런트가 방출 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무직 신분인 고효준에게 입단 테스트를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두산 관계자에 따르면 두산은 지난달 말 트레이닝센터에서 개인 훈련 중인 고효준에게 처음 연락을 취해 몸 상태를 체크했다. 이후 4월 11일부터 16일까지 엿새 동안 이천에서 입단 테스트를 개최했고, 고효준은 42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최고 구속 147km 강속구를 뿌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두산 구단은 “혼자 몸을 만들었지만, 시속 140km 중반대 구속을 꾸준히 유지했다. 변화구 제구 및 트래킹 데이터도 준수했다. 수직 무브먼트 등 각종 데이터가 지난해보다 좋아진 부분을 확인하고 오늘(17일) 계약을 진행했다”라고 계약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고효준은 23년간 풍부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불펜에서 쓰임새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또 경험이 많은 베테랑으로서 젊은 선수들이 많은 두산 불펜의 멘토 역할도 기대한다”라고 고효준에게 1억 원을 안긴 이유를 설명했다.
고효준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SSG 랜더스에서 방출된 ‘방출생 신분’이라 두산과 육성선수 계약을 체결했다. 육성선수의 1군 등록은 5월 1일부터 가능하며, 고효준은 그 때까지 퓨처스팀에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린 뒤 이승엽 감독의 부름을 받을 전망이다.

은퇴 위기를 딛고 현역을 연장한 고효준은 “현역 연장의 기회를 주신 두산 베어스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세광고를 나와 2002년 롯데 자이언츠 2차 1라운드 6순위로 입단한 고효준은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롯데, LG, SSG 등을 거치며 23년 간 601경기 47승54패 4세이브 56홀드 890이닝 평균자책점 5.27을 기록했다. 지난해 26경기 2승 1패 5홀드 평균자책점 8.18을 남기고 SSG 방출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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