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는 아직 자신의 머리 사이즈에 맞는 헬멧을 착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뛰었던 김하성도 마찬가지였다.
서양 사이즈로 제작된 헬멧이 김하성 이정후와 같은 동양인에게는 너무 컸다. 김하성이 그랬듯이 이정후 역시도 스윙을 할 때마다, 그리고 달릴 때마다 벗겨지는 헬멧과 씨름해야 했다.
올 시즌을 치르면서도 헬멧을 다시 붙잡는 모습들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18일(이하 한국시간)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이정후의 헬멧 때문에 해프닝이 발생했다.
이날 이정후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오나전 휴식을 취하는 듯 했지만 4-6으로 따라붙은 9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대타로 등장했다. 여느 때처럼 이정후는 헬멧을 만지작 거리면서 타석을 준비했다. 좌완 호세 알바라도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내야 안타를 치고 나갔다.

이후 후속타 없이 경기는 종료됐다. 그런데 이날 주심을 맡았던 필 쿠지 심판은 샌프란시스코 더그아웃 쪽 터널로 찾아갔고 이정후와 한동희 통역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
미국 현지에서 설명한 사정은 이렇다. 1볼 1스트라이크에서 알바라도의 3구째 99.5마일 싱커가 낮게 꽂혔다. 스트라이크 존 낮은 코스에 들어왔고 필 쿠지 심판은 스트라이크 콜을 외쳤다. 이때 이정후가 헬멧을 만지작 거렸다. 이 대목에서 필 쿠지 주심이 이정후에게 무언가 말을 건넸다.
‘NBC스포츠 베이 에어리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1-1 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 존 아래쪽에 콜이 나오고 이정후는 헬멧을 툭 쳤다. 쿠지 주심은 이정후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챌린지 하려는 행동으로 오해한 것으로 보였다. 쿠지 주심은 이정후에게 무언가를 말했고 이후 경기가 끝나고 다시 그 상황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설명했다.
이정후는 경기 후 현지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이언츠 경기를 자주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투구 하나 할 때마다 헬멧을 고쳐쓴다. 매 투구마다 한다. 그래서 저는 영어를 못 한다고 말했고 주심이 계속 뭔가 말하길래 영어로 못한다고만 말했다. 그래서 벌어진 일이다”라면서 “오늘 주심이 예민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쿠지 주심은 이정후가 헬멧을 툭 치는 것을 스트라이크 판독을 요청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기간 동안 ABS(자동투구판독시스템)를 시범 운영했다. KBO리그처럼 매구 판정을 하는 게 아니라 선수가 챌린지를 신청하는 시스템이다. 이때 챌린지 제스처가 헬멧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쿠지 주심은 때아닌 오해를 했다.
심판 조장이었던 댄 벨리노는 현지 취재진에게 “시범경기 기간 동은 시범 운영했던 것과 관련한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이제 선수들은 헬멧을 두드리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건 스트라이크 볼 판정에 항의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판정 항의와 같은 것이다”라며 “물론 이정후가 실제로 항의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필 쿠지 주심은 ‘판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머리를 두드리면 판정에 항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언어 장벽이 있어서 이정후가 주심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심판 조장이 설명을 했지만, 그동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장면에 딴지를 걸고 나섰다. 사실 이날 필 쿠지 주심은 많은 상황들을 겪었다. 샌프란시스코 선발 조던 힉스가 필라델피아 트레이 터너에게 101마일 강속구를 던져 몸에 맞혔다. 필라델피아 더그아웃이 흥분했다. 또 필라델피아 알렉 봄이 타석에 늦게 들어서면서 힉스는 분노했다. 말싸움도 일어졌다. 필 쿠지 주심은 이를 말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힉스는 “저는 주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제 얼굴 앞으로 다가오는 게 싫어서 자리를 정리했어야 했다. 곳곳에서 신경전이 벌어진 날이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