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제(18일) 고시엔 구장이다. 한신 타이거스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페넌트레이스 경기가 벌어졌다.
3회 초, 외국인 타자 샌드로 파비안의 타석이다. 카운트 0-1에서 2구째였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붕~’ 하고 떠오른다. 공중에서 한참을 나풀거리듯 팔랑거린다.
도착 지점은 몸 쪽에 살짝 높다. 하지만 코스가 문제가 아니다. 타자도, 구심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포수 미트에 안착했지만, 스트라이크 판정은 받지 못했다.
그 순간이다. 모두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쏠린다. 표시된 볼 스피드는 ‘시속 62㎞’. 그러자 고시엔 구장을 가득 메운 4만여 팬들이 술렁인다. 기습에 실패한 투수 무라카미 쇼키(26)의 표정은 살짝 일그러진다.
슬로 커브는 그가 가끔 던지는 구종 중 하나다. 그러나 이렇게 느린 속도는 처음이다. 그야말로 날아가는 공 위에 파리가 앉을 정도다.
KBO 리그에서는 유희관이 이 방면의 달인이다. 130㎞ 안팎의 느린 직구와 함께, ‘아리랑’ 커브를 즐겨 사용했다. 그래도 그의 공은 대략 70~80㎞ 정도는 유지했다. 팬들의 기억에는 73㎞가 가장 느린 구속으로 남았다. 이날 무라카미에 비하면 불같이 빠른 광속구다.

회심의 일구가 빗나간 탓이다. 선발 무라카미의 이날 성적은 영 신통치 않다. 5회도 넘기지 못했다. 4이닝 동안 안타 7개를 맞고 5실점했다. 탈삼진 2개, 볼넷은 3개를 허용했다. 투구수 102개가 헛수고로 끝났다.
그렇다고 절대 만만한 투수는 아니다. 어제가 대기록에 도전하는 경기였다. 이전까지 개막 3연승을 달렸다. 이날만 이겼으면 (개막 후) 4전 4승이 된다. 한신 구단에서는 1953년 후지무라 다카오가 유일하게 달성한 전적이다.
그러나 72년 만의 도전은 아쉬운 실패로 끝났다.
체형도 ‘한창때’ 유희관과 비슷하다. 175cm, 83㎏의 몸매다. 다만, 150㎞가 넘는 빠른 볼도 갖췄다. 최고 출력은 154㎞까지 낼 수 있다. 평균 회전수도 2400rpm(NPB 평균 2200rpm)을 넘는다. 여기에 130㎞대의 컷패스트볼과 포크볼을 구사한다.
물론 슬로 커브도 4~5% 정도 섞는다. 평소에는 100㎞ 정도의 스피드로 타이밍을 뺏는다. 이날처럼 60㎞대를 쓴 적은 없다.

우완 무라카미는 2020년 드래프트 5번으로 입단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22년까지 1군 등판은 2게임, 5.1이닝이 전부였다(평균자책점 16.88).
3년 차인 2023년에 깜짝 활약을 펼쳤다. 22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10승 6패의 성적을 올렸다. ERA 1.75, WHIP 0.74의 기록을 남겼다. 덕분에 한신은 38년 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자신도 센트럴리그 MVP와 신인왕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역대 세 번째다. 노모 히데오(1990년) 이후로 33년 만의 일이었다.
지난해는 7승 11패(ERA 2.58)로 약간 부진했다. 올해는 3승 1패(ERA 3.28)를 기록 중이다.
NPB에도 종종 ‘아리랑 볼’이 등장한다. 역사상 가장 느린 볼에 대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구속 측정이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이토 히로미(니폰햄)의 투구가 화제를 모았다. 3월 29일 지바 롯데 마린즈와 경기였다. 6회 가쿠나카 가쓰야의 타석 때 던진 공이다. 높이 솟았다가, 포수 미트에 간신히 들어갔다. 초 슬로 커브였다.
문제는 구장 스피드건에도 구속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팬들이 중계 화면을 바탕으로 산출 작업에 들어갔다.
투구 장면은 39프레임이 잡혔고, 1프레임은 0.03초로 계산된다. 마운드까지 거리는 18.44m…. 이를 토대로 사칙연산을 동원했다. 그 결과 구속은 약 57㎞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추정치였지만, 사상 최저 속도 아니겠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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