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호프(2)]‘대기만성’김재박, “김응룡 감독을 이겼을 때 가장 짜릿했다”
OSEN 박선양 기자
발행 2025.04.22 09: 01

2026년이면 한국야구박물관(명예의 전당)이 탄생할 전망이다. 그동안 말이 많았던 야구박물관이 부산 기장군에 올 여름 착공 예정으로 2026년 개관할 예정이다. 박물관에 들어갈 소장품은 그동안 수집이 많이 돼있는 상태이고 그곳에 한 자리를 차지할 명예의 전당도 이제부터 준비해야 한다. 오센(OSEN)은 특별기획으로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주인공이 될 레전드 스타들을 찾아 인터뷰한다. 또한 한국야구 미래를 책임질 기대주(Hope)를 찾아갈 예정으로 가칭‘KBO 호프를 찾아서’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야구를 논할 때면 김재박(71) 전 감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선수로서 빼어난 기량으로 레전드 반열에 오른 것은 물론 감독으로서도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남긴 대스타였습니다. ‘그라운드의 여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재박 감독을 만나봤습니다.(2편.끝)
=요즘은 40대 초반 감독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김 감독님이 41세이던 1995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최연소 사령탑이었습니다. 새로 야구계에 뛰어든 현대 유니콘스의 초대 사령탑에 올랐는데 그 자리에 맡게 된 배경이 있나요.

▲지금은 40대 초반 감독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죠. 현대가 저를 선택한 배경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새출발하는 신생팀 이미지에 제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선수시절 막바지에 LG에서 태평양으로 이적해서 은퇴하고 수석코치로 활동하고 있던 점도 한 배경이었겠죠.
=감독으로서 거둔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때는.
▲모든 우승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아무래도 현대 유니콘스 사령탑으로 거둔 마지막 우승이 가장 기쁜 순간입니다. 감독 데뷔 첫 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아픔을 맛보게 해줬던 김응룡 감독님을 이기고 거둔 우승이라 더욱 짜릿했죠.
김응룡 감독님과의 인연은 이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 뛸 때인 1977년 니카라과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할 당시 사령탑이 김응룡 감독이셨습니다. 그리고 감독 데뷔 첫 해인 1996년 한국시리즈서 사령탑으로 맞대결했으나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죠. 그 때는 해태 타이거즈가 워낙 전력이 강해 패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2004년 맞대결 때는 대등한 전력에서 겨뤄 승리를 거뒀습니다. 김응룡 감독님이 삼성으로 옮기면서 삼성이 FA 투자 등으로 전력이 강해지면서 팽팽한 대결이 펼쳐졌죠. 결국 9차전까지 가는 혈투끝에 현대가 이기면서 짜릿했습니다. 김응룡 감독님을 이겨야 내가 감독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 어렵게 우승해서 뿌듯했죠.
=현대에서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을 일군뒤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친정팀 LG 트윈스로 옮겨 우승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부족했던 부분이나 아쉬웠던 점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감독이 서너번 바뀌면서 LG 팀전력이 무너져 있었죠. 부상 선수도 많고 현대에 비해 전력이 많이 약했죠. 팀전력을 보니 ‘내가 너무 빨리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5,6년은 선수단을 정비해야 팀전력이 올라갈 수 있는 상태였죠.
게다가 구단주가 바뀌고 아끼는 분위기가 되면서 외국인 선수, FA 등 투자도 부족해졌죠.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크죠. 내가 그만두고 나니까 일본에서 이병규가 돌아오는 등 투타 전력이 조금 더 나아지더라고요. 그럴 줄 알았으면 5년 계약을 할 걸....그래도 기본기와 웨이트 등 체력 훈련을 많이 시켜서 나중에 선수들이 많이 좋아진 점은 보람이죠.
=선수시절부터 감독님은 럭키 세븐 ‘7’자를 좋아하셨습니다. 무슨 일화가 있나요.
▲야구 시작하고 처음에는 포수나 내야수 번호인 1번내지는 2, 22번 등이었는데 왠지 7자를 꼭 달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서 유격수로 자리잡으면서 7자를 달게 됐는데 그 이후 모든 일이 잘 풀렸죠. 국가대표에, 프로선수에, 감독때까지 7자와 인연이 계속됐습니다. 현대 감독에 오르면서는 70번을 달았고 지금까지 휴대폰 끝번호도 7070입니다. 내게 7은 영원한 ‘행운의 숫자’인 셈이죠.
-늦었다고 절대 포기하지 마라. 간절함과 의지, 그리고 실천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요즘 프로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프로에 입단하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어요. 중고등학교까지 대부분 7,8년씩 야구를 해왔으니 기본기는 어느 정도 갖췄졌다고 보고 그 다음은 본인의 노력에 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노력이 뒷받침될 때에만 성공합니다.(1편에서 밝혔듯이 김 감독 자신도 고등학교때까지는 체격도 작고, 힘도 없고, 발도 느려서 야구선수로는 한창 부족했지만 대학 1학년 때부터 남몰래 웨이트와 달리기로 공수주를 갖춘 스타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요즘 한국야구를 보면 진짜 아쉬워요. 지도자들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공부를 좀 덜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기본기에 대한 철학, 자신만의 지도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보이지 않아 놀라워요. 프로 2군, 3군에서 1, 2년만 선수와 지도자가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는 환경입니다. 지금은 시설 등이 예전보다 훨씬 좋으니까요.
10여년전부터 아마야구부터 한국야구가 퇴보하는 느낌입니다. 지도자들이 더 공부하고 잘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본기와 체력, 그리고 정신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죠. 이런식으로 계속가게 되면 한국야구의 위기가 올 수 있어요.
=야구 인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아무래도 나를 세상에 알린 대학교 2학년 때 대학야구 가을리그에서 리딩히터가 됐을 때죠. 그게 나의 야구 인생 성공기에 시초이니까요. 그 이후 수비 잘되고, 공격 잘되고, 대학대표, 국가대표로 죽 이어졌으니까요.
=요즘 프로야구는 자주 보시나요. 인상적인 선수는.
▲많이는 못보지만 하이라이트 등은 꾸준히 보고 있습니다. 베테랑들은 좀 알겠는데 어린 선수들은 이름을 잘 모르겠어요. 인상적인 선수라면 KIA 유격수인 박찬호가 눈에 띄네요. 야구는 은퇴할 때까지 기본기가 중요하고 꾸준히 노력하고 연구해야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부상방지를 위한 보강훈련도 많이 해야 합니다. 프로는 선수생활을 오랜 하는 것이 최고죠. 현대 유니콘스가 잘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부상 선수가 적었던 것도 한요인입니다.
=감독이 갖춰야할 덕목이나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감독은 모든 걸 책임지는 자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선수뿐만아니라 프런트와도 잘 조화를 이루는게 중요합니다. 감독이 지휘관이자 선장이니까 선수단과 프런트가 화합하는데 힘을 쓰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어느 한쪽이 약해지거나 삐끗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감독님이 가장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애장품이라면. 또 지금까지 감독님을 응원해주고 있는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야구박물관에 여러가지를 기증했지만 일부 트로피와 훈장 등은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첫 메달인 대학야구 수위타자는 어디 있는지 못찾고 있어서 아쉽네요. 선수때부터 지금까지 잊지않고 응원해주시는 팬여러분, 사랑합니다.
/박선양 기자 sun@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