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스코어 6-1이다. 승부는 이미 기울었다. 리드하는 홈 팀의 8회 말 공격. 1사 1, 2루 기회다. (20일 고시엔 구장, 한신 타이거스-히로시마 카프)
다음 타자 초구가 문제였다. 투구가 머리 쪽으로 튀었다.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헬멧에 맞았다. 그런데 다행이다. 타자가 금세 일어선다. 미안해하는 투수를 향해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낸다. 일은 거기서 일단락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사건은 이제부터다.
이 순간 누군가 번개 같이 달려 나온다. 홈 팀 감독 후지카와 큐지(44)였다. 한때 일본 최고의 마무리 투수라고 불렸다. 지도자로는 올해가 첫 해다.
그는 상대 벤치를 향해 맹렬한 분노를 터트린다. ‘이리 와’라는 도발의 손짓도 보낸다. ‘한판 붙어보자’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의사 표현이다. 한 때 메이저리그 물을 좀 먹은 티가 난다(2013~2015년, 시카고 컵스, 텍사스 레인저스).
이 상황에 가장 놀란 것은 피해자다. 머리에 맞고 쓰러졌던 타자 사카모토 세이시로(31)가 한사코 말린다. 뒤이어 코치들이 따라 나왔다. ‘그 정도 하시라’며 뒤에서 붙잡는다.
그래도 감독이 저러는데 구경만 할 수는 없다. 양쪽 선수들이 모두 출동했다. 홈 플레이트를 사이에 두고 대치 상태다. 하지만 더 이상은 없었다. 모두들 조용해지길 기다리는 눈치다.

결국 1분 남짓이다. 감독 혼자서 분통을 터트리다 끝난 형국이다. 가해자(투수)를 향해 레이저를 쏘고, 상대 벤치(감독)를 향해 도발하는 정도에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그다음은 심판진이 정리에 들어간다. 규정상 투수(오카모토 슌)는 퇴장 조치됐다. 헤드샷을 맞은 타자는 대주자로 교체됐다.
1사 1, 2루는 만루로 변했다. 한신은 여기서 2점을 추가했다. 이 게임 최종 스코어는 8-1이 됐다. 센트럴리그 1~2위 간의 맞대결은 그렇게 끝났다. 1위 히로시마와 2위 한신의 게임차는 1.5로 좁혀졌다.
이후 초짜 감독을 향한 칭찬이 쏟아진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필요한 행동이었다’라는 견해다.
“후지카와 감독의 뜨거운 성격이 잘 드러났다. 우리 선수가 위험에 빠진 것 아닌가.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타자 사카모토가 말리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팀 워크를 위해서도 옳다.” (시모야나기 쓰요시, 한신 투수 출신 평론가)
“마냥 차분하고, 냉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거칠게 나서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런 지휘관의 모습에 선수들은 든든함을 느끼게 된다.” (다카기 유타카 전 DeNA 수석 코치)
물론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머리 쪽 사구가 고의로 나올 상황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기고 있는 경기였다. 흐름이 변하지 않도록, 좀 더 쿨하게 넘겨야 했다.” (타오 야쓰시, 전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

이날 경기 후 후지카와는 “머리 쪽은 위험하다. 정말 안 된다”라며 당시 흥분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또 히로시마의 아라이 감독도 “변화구(커터)를 던지려다 손에서 빠진 것 같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라고 사과했다.
사구(死球) 피해에 대한 감독의 반응 중 압권은 KBO 리그에서 있었다.
2019년 4월 28일 경기였다. 두산 정수빈이 타석에서 쓰러졌다. 롯데 구승민의 빠른 공에 등 쪽을 맞은 것이다. (진단 결과 오른쪽 8번 갈비뼈 골절상이 발견됐다.)
그러자 당시 베어스 감독이던 김태형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마운드의 투수와 상대 벤치를 향해 거칠게 불만을 터트렸다. 양상문 감독과는 신경전도 벌어졌다.
그때 했던 대사 중에 “투수 같지도 않은 XX”라는 말이 곧잘 회자된다. 진짜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은 ‘투같새’라는 줄임말로 야구판에 박제됐다.
사건 이틀 뒤다. KBO는 상벌위원회를 열었다. 여기서 김 감독에게 제재금 200만 원이 부과됐다. 양 감독에는 엄중 주의 조치를 의결했다.
5년 후 김태형 감독이 롯데에 부임했다. 구승민과의 운명적인 재회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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