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선임기자]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1912~2002) 선생의 우승 사진에 찍혀있던 일장기를 지운 『조선중앙일보』 원본 신문이 사상 처음으로 경매시장에 등장,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고서화 분야 국내 최대 경매업체인 ‘코베이’의 ‘삶의 흔적 경매전’에 최근 출품된 『조선중앙일보』는 1936년 8월 10일, 13일, 14일 치(13일 석간) 3점이다. 3점 모두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 관련 기사와 사진이 집중 실려 있다.
8월 10일 치(월요일, 지령 3033호)에는 ‘대망의 마라톤, 손• 남 양군 제패? 쾌보를 기다리는 반도 산하’ 라는 제목으로 손기정, 남승룡 두 선수에 대한 기대감을 실은 예고기사 등을 게재했다.

손기정 우승(8월 12일 새벽 한 시 반께) 다음 날인 8월 13일 치(목요일, 지령 3036호)에는 신문 한 면을 전부 할애, ‘올림픽패자손기정화보(霸者孫基禎畫報)’ 라는 큰 제목과 ‘공중을 타고 오는 첩보에 삼천리 산하는 감격의 파도, 마라손 왕 우리들의 손 군이 세계의 영관(榮冠)을 얻기까지’ 라는 부제를 달고 손기정의 우승 역정을 모두 27장의 사진으로 편집, 설명을 곁들여 특집으로 꾸몄다.
8월 14일 치(13일 석간, 지령 3037호)에는 『조선중앙일보』가 끝내 폐간에 이르게 된 문제의 사진 한 컷(손기정이 월계관을 쓴 시상식 장면)이 실려 있다. 그 사진은 금메달을 딴 손기정과 2위 하퍼(영국), 3위 남승룡 선수가 시상대에 나란히 서 있는 것으로 손기정의 유니폼 가슴에 있어야 할 일장기가 지워져(?) 있다.
8면 오른쪽 하단에 들어 있는 세로 4단 크기의 그 사진은 ‘머리에 빛나는 월계관(月桂冠), 손에는 굳게 잡힌 견묘목(樫苗木=떡갈나무묘목)’, ‘올림픽 최고영예(最高榮譽)의 표창(表彰) 받은 우리 손 선수(孫 選手)’라는 제목 옆에 ‘우(右)는 우리 남승룡(南昇龍) 선수, 좌(左)는 이등(二等)한 하파(영국의 하퍼) 선수’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사진은 월계관을 쓴 손기정이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시상대에 서 있고 유니폼 가슴의 일장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표정은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읽을 수 없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사진에 새겨져 있는 일장기를 없애버린 사건은 그동안 이번에 출품된 『조선중앙일보』 가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 전해져 왔으나 실제로는 『동아일보』 역시 같은 날인 8월 13일 치 일부 석간신문에 일장기를 지운 사진이 확인됐다.(채백 부산대 교수의 『사라진 일장기의 진실』 참조)
손기정의 우승 직후에 실었던 『조선중앙일보』 나 『동아일보』의 8월 13일 사진에 대해 당초 조선총독부는 시비를 걸거나 별다른 트집을 잡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8월 25일 치 『동아일보』 에 실린, 손기정이 테이프를 끊으며 골인하는 사진에 붙어 있던 일장기를 체육기자 선구자인 이길용(1899~납북, 1950?)의 주동으로 ‘일장기를 말살’(이길용 기자의 표현) 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는 갑작스레 달라졌다. 급기야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을 당했고, 『조선중앙일보』 에도 뒤늦게 불똥이 튀어 자진 휴간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번졌다.
그와 관련, 원로 언론학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 교수는 “조선중앙일보 사진은 일본 신문의 사진 동판을 떠서 다시 신문에 내니까 앞이 흐릿해 지면이 나왔을 당시에는 검열에 문제 되지 않았다. 그 후에 동아일보가 깨끗한 사진을 확실하게 지운 걸 내니까 다시 소급해서 조선중앙일보도 마찬가지로 걸려들게 된 것”이라며 “조선중앙일보가 놀라서 자진해서 2주일간 휴간하겠다고 조선총독부에 휴간서를 냈으나 거부당한 뒤 9월 4일 자로 근신의 뜻을 표하고 당국의 처분이 있을 때까지 휴간하겠다는 사고를 내고 5일부터 휴간에 들어간 것”이라고 경위를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 중반에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더불어 3대 신문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던 『조선중앙일보』 는 1924년에 창간한 『시대일보』 가 그 뿌리다. 뒤에 『중외일보』 , 『중앙일보』를 거쳐 1933년에 여운형이 사장으로 들어가면서 제호를 『조선중앙일보』로 바꾸었다. 이 신문은 결국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큰 수난을 겪은 『동아일보』 사태가 영향을 미친 데다 재정난마저 겹쳐 그대로 폐간의 길을 걷게 된다.
이번에 코베이에 출품된 『조선중앙일보』 3점은 ‘국내 유일의 신문 수집가’로 평생을 보냈던 오한근(1908~1974) 선생이 모은 자료 중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베이 측은 『조선중앙일보』 3점 시작가를 500만 원으로 책정했다. 신문의 크기는 40×55cm로 현행 신문과 같고, 세월이 흘렀으나 상태도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코베이 삶의 흔적’ 경매는 5월 14일에 열린다.
사진 제공=코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