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서 7년 동안 만년 백업이었던 무명선수가 롯데 이적과 함께 강남의 한 국밥집에서도 거론이 되는 유명 인사로 우뚝 섰다. 1군보다는 2군 생활이 익숙했던 전민재(26)는 어떻게 1군 타격 1위로 올라설 수 있을까.
28일 오전 기준 2025 신한 SOL뱅크 KBO리그 타격 부문 1위는 타격의 달인으로 불리는 손아섭(NC 다이노스)도 김현수(LG 트윈스)도 아니다. 지난해까지 무명 선수에 가까웠던 전민재가 타율 3할7푼8리 맹타를 휘두르며 1위를 질주 중이다.
단순히 타율만 높은 게 아니다. 장타율 .489 출루율 .417을 더해 OPS가 .906(리그 10위), 득점권 타율이 4할2푼3리(리그 6위)에 달한다. 아울러 연일 견고한 수비력까지 선보이면서 롯데 유격수 고민까지 말끔히 지워냈다.
지난 27일 잠실에서 만난 전민재는 “과거와 비교해 생각이 바뀐 거 말고는 없다. 생각만 조금 편하게 바꿨는데 결과가 계속 나오면서 자신감이 붙는다. 수비도 타석에서 결과가 좋으니까 계속 과감한 플레이를 시도할 수 있게 된다”라고 반등 비결을 밝혔다.
기술적으로는 타석에서 이전보다 힘을 뺐다. 전민재는 “50%의 힘만 갖고 친다는 생각이다. 실내 케이지에서 치는 것처럼 치니까 인플레이 타구가 많아진다. 거기에 운까지 따라서 계속 안타가 많이 나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전민재는 대전고를 나와 201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두산 2차 4라운드 40순위로 프로에 입성했다. 그러나 두산 내야진의 두터운 뎁스를 뚫지 못하며 이천 생활을 전전했고, 병역 또한 상무가 아닌 현역으로 의무를 해결했다. 지난해까지 전민재의 1군 통산 7시즌 기록은 177경기 타율 2할5푼5리 82안타 37타점 OPS .604가 전부였다. 지난해 100경기 출전을 제외하면 데뷔 후 6년 동안 77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전민재는 작년 11월 트레이드를 통해 정든 두산을 떠나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트레이드 당시만 해도 신인왕 출신 정철원과 외야 기대주 김민석의 활약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전민재가 타격 1위를 질주하며 트레이드의 손익계산서를 써내려가고 있다.
두산 시절에는 신분이 백업이라 적은 기회에서 어떻게든 강한 임팩트를 남겨야한다는 부담이 컸다. 롯데 김태형 감독은 “두산 사령탑 시절 전민재가 2군에서 좋다고 해서 올렸는데 선수가 긴장을 해서 막 넘어지고 그랬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늘 못해도 내일 라인업에 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주전이라 한층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전민재는 “확실히 백업과는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많이 다르다. 오늘 못 한다고 내일 못 나가는 게 당장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부담 없이 경기에 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달라진 위상 또는 인기를 실감하냐는 질문에는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전민재는 “어제(26일) 있었던 일인데 장두성과 청담동에서 국밥을 먹으러 갔는데 TV에서 야구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그걸 보던 어떤 아저씨가 ‘요즘 롯데에 전민재가 새로 왔는데 잘한다’라고 하셨다. 장두성과 서로 눈 마주치면서 웃음을 참고 밥을 먹었다. 그분이 날 알아보시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전민재는 인기가 올라간 만큼 팬서비스에도 더 신경을 쓸 계획이다. 그는 “확실히 부산 시민들 함성이 남다르다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라며 “요즘 솔직히 말하면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고 출근길도 즐겁다. 출근길에 만나는 팬들에게 되도록 사인을 다 해드리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전민재에게 끝으로 남은 시즌 목표를 물었다. 타격 1위 또는 중심타선이라는 원대한 꿈을 말할 법도 했지만, 전민재는 “타격 순위를 확인한 적은 없다. 주변에서 계속 말해줘서 내가 1위인 걸 알았다”라며 “타순 욕심도 전혀 없다. 나는 8번, 9번타자가 제일 편하다. 나보다 기량이 훨씬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난 여기가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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