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기 마치면 내려가야 하니까…”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경문 감독은 지난 30일 대전 LG전을 앞두고 포수 허인서(22)의 대타 기용을 예고했다. 허벅지 통증으로 2군에 내려간 외야수 최인호의 몸 상태가 회복되면서 1일 1군 엔트리에 등록하기로 했는데 허인서가 자리를 비워주게 된 것이다.
2022년 2차 2라운드 전체 11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허인서는 팀 내 최고 포수 유망주로 상무에서 군복무도 마친 군필 자원이다. 최재훈과 이재원이 지키고 있는 한화 안방이라 당장 1군에선 뛸 자리가 마땅치 않다. 개막 엔트리에 들어갔지만 첫 2연전 동안 벤치만 지키다 2군에 내려갔던 그는 지난달 25일 다시 엔트리에 등록됐다. 주전 포수 최재훈의 내전근이 좋지 않았고, 김경문 감독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허인서를 불렀다.
한시적인 3인 포수 체제였는데 최재훈의 상태가 악화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허인서가 1군에 등록된 뒤 한화는 4경기 연속 1점차 접전 승부를 반복했고, 백업 선수들에게 출장 기회를 줄 상황이 나오지 않았다. 최인호의 복귀 날짜가 잡히면서 허인서는 이번에도 벤치만 지키다 2군에 내려가는 분위기였다.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김경문 감독은 그런 허인서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김 감독은 “계속 1점차 경기를 하면서 (허)인서를 내보내지 못했다. 오늘 경기 마치면 (2군으로) 내려가야 하니까 대타로 한 타석이라도 팬들한테 인사할 시간을 주려 한다”고 말했다. 선수 동기 부여 차원에서라도 경기 출장 없이 2군에 보내는 건 감독 입장에서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30일 경기도 팽팽한 투수전이 펼쳐지며 1점차 승부로 전개됐다. 8회초까지 한화의 3-2 리드. 경기 흐름상 허인서가 교체로 나설 타이밍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였는데 김 감독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4-2로 앞선 8회말 2사 2루 이원석 타석에서 허인서가 대타로 등장했다. 시즌 첫 출장으로 상무 입대 전이었던 2022년 9월25일 잠실 두산전 이후 949일 만의 1군 경기였다.

2군행이 확정된 상황에서 나선 시즌 첫 타석. 어렵게 찾아온 귀중한 기회를 허인서는 쉽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LG 우완 배재준을 상대로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 몸쪽 높게 들어온 시속 151km 직구를 잡아당겨 좌측에 떨어지는 2루타로 연결했다. 3루 주자 노시환을 홈에 불러들인 1타점 2루타. 스코어를 5-2로 벌린 쐐기타로 프로 데뷔 첫 타점을 장식하며 한화의 4연승에 힘을 보탰다.
접전 상황에서 대타 약속을 지킨 감독도 대단하지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답한 허인서의 타격도 놀라웠다. 2군행은 어떻게 포장해도 선수 입장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이날 김 감독과 허인서가 보여준 믿음과 보답은 2군행도 낭만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좋은 기억을 안고 다음을 기약하며 2군에서 준비할 수 있게 됐다.
경기 후 허인서는 “전역하고 오랜만에 타석에 서서 설레기도 했고, 긴장도 됐는데 팬분들의 응원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 팬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첫 타점을 팬분들이 같이 좋아해주셨는데 앞으로 준비를 더 잘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화로선 낭만과 실리를 모두 잡은 경기였다. 선발 류현진의 7이닝 6피안타(1피홈런) 1볼넷 6탈삼진 2실점 호투와 7회 대타 황영묵의 역전 결승 투런 홈런, 8~9회 한승혁과 김서현의 철벽 방어로 LG에 5-2 역전승을 거뒀다. 최근 4연승 포함 18경기에서 15승3패로 대폭주한 3위 한화는 19승13패(승률 .594)를 마크, 1위 LG(20승11패 승률 .645)에 1.5경기 차이로 따라붙었다.
김경문 감독은 “선발 류현진이 7이닝 동안 자신의 역할을 다해줬기 때문에 경기 후반에 역전할 수 있었다”며 “팽팽한 흐름 속에 7회말 대타로 출전한 황영묵이 시즌 첫 홈런을 역전으로 이끄는 값진 2점 홈런으로 쏘아 올렸다. 데뷔 첫 타점을 기록한 허인서에게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승리 소감을 전했다.

한화는 1일 LG전 선발투수로 사이드암 엄상백을 내세워 5연승을 노린다. 4연패 탈출이 시급한 LG에선 좌완 손주영이 선발등판한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