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타고난 투수" 류현진 무너질 줄 알았는데…만루 홈런 맞을 각오로 가운데 직구 2개 '최강 멘탈'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5.05.02 05: 30

“진짜 타고난 투수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류현진(38)을 두고 김경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30일 대전 LG전에서 류현진이 보여준 위기관리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류현진은 이날 LG 상대로 7이닝 6피안타(1피홈런) 1볼넷 6탈삼진 2실점 호투를 펼치며 한화의 5-2 역전승 발판을 마련했다. 시즌 3승(1패)째를 거둔 류현진은 평균자책점을 3.15에서 3.05로 낮췄다. 

한화 류현진. 2025.04.11 / jpnews@osen.co.kr

LG 선발 요니 치리노스도 호투하며 6회까지 1-1 팽팽한 투수전. 류현진에게 7회초 고비가 왔다. 오스틴 딘, 문보경에게 연속 안타를 맞은 뒤 김현수의 타구가 유격수 앞에서 바운드로 떨어지며 내야 안타가 됐다.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서 LG에 리드를 내줬고, 무사 1,2루 위기가 이어졌다. 
잘 맞은 타구였으면 깨끗하게 인정할 수 있지만 애매한 타구가 안타에 실점으로 이어졌다. 찜찜할 법도 했지만 류현진은 침착했다. 오지환의 희생번트로 이어진 1사 2,3루에서 박동원을 고의4구로 1루에 보내 만루 작전을 택했다. 박해민의 강습 땅볼 타구가 투수 쪽으로 향했고, 류현진이 한 번에 잡지 못했지만 떨어진 공을 빠르게 주워 3루 주자를 홈에서 잡아냈다. 바로 잡았더라면 병살로 이닝이 끝날 수 있었기에 류현진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한화 류현진. 2025.04.11 / jpnews@osen.co.kr
여기서 또 한 번 무너질 뻔한 순간이 왔다. 계속된 2사 만루 위기에서 대타 문성주 상대로 1~3구 연속 볼을 던진 것이다. 3구째 슬라이더가 바깥쪽 낮게 존을 벗어나자 류현진답지 않게 잠시 고개를 젖히면서 표정이 흔들렸다. 볼 하나 더 나오면 밀어내기 실점을 할 수 있는 위기. 류현진은 4구째 직구를 가운데로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5구째 직구도 한복판으로 넣었다. 시속 143km로 구속이 빠르진 않았는데 문성주의 타이밍이 늦었고, 유격수 땅볼로 이닝이 종료됐다. 
류현진이 추가 실점 없이 7회초를 넘기면서 한화가 7회말 기회를 잡았다. 이진영의 중전 안타와 이도윤의 희생번트로 이어진 1사 2루에서 대타 황영묵이 우측 8m 몬스터월을 넘어가는 역전 투런 홈런을 폭발했다. 패전 요건이었던 류현진이 승리투수로 바뀐 순간. 황영묵의 한 방이 한화의 역전승을 이끌었지만 그 전에 류현진이 만루 위기에서 볼볼볼을 하고도 극복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1일 LG전이 우천 취소되기 전 취재진을 만난 김경문 감독도 류현진의 7회를 떠올리며 “그러니까 베테랑이다. 본인이 노력도 정말 많이 하지만 타고난 진짜 투수”라면서 “(아웃될 수 있는) 그런 타구가 안타로 기록되면 투수는 더 많은 공을 던지게 되고, 점수를 주면 더 힘들어진다. 자기 제구도 잃을 수 있는데 7회까지 잘 막았다”고 돌아봤다. 
한화 김경문 감독과 류현진이 승리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25.04.11 / jpnews@osen.co.kr
류현진도 “7회가 아쉬웠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추가 실점이 없었던 게 다행이었다. (박해민의) 땅볼을 완벽하게 잡아 병살을 했으면 더 편했을 것이다. 그 다음 (문성주 타석 때) 스리볼까지 몰렸지만 그때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홈런을 맞더라도 가운데 던지자’ 그거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말은 쉬워도 투수는 타자에게 맞는 것을 싫어하는 본능이 있다. 주자가 꽉 찬 만루에서 한가운데 직구를 두 번 연속으로 던지는 건 보통 멘탈로는 어렵다. 하지만 류현진은 만루 홈런 맞을 각오로 정면 승부했고, 문성주도 평소 그답지 않게 타이밍이 늦어 유격수 쪽으로 먹힌 땅볼이 나왔다. 
염경엽 LG 감독도 “3B-1S에서 현진이가 한가운데 밀어넣는 볼이었다. 평소 성주라면 안타를 쳐야 될 볼이었는데 야구가 안 되려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류현진의 직구가 아니라 멘탈에 막혔다. 김경문 감독이 말한 ‘진짜 투수’의 의미도 위기 상황에서 피하지 않고 승부를 들어가는 류현진의 멘탈을 인정한 것이다. 
한화 류현진. 2025.04.11 / jpnews@osen.co.kr
물론 류현진이라고 해서 밀어내기 볼넷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KBO리그에선 딱 한 번 있었다. 프로 3년차였던 2008년 5월6일 사직 롯데전 5회 2사 만루 위기에서 강민호에게 5구 만에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두 차례 있었다. LA 다저스 소속이었던 2017년 6월18일 신시내티 레즈전 3회 무사 만루에서 에우제니오 수아레즈와 6구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으로 밀어내기 실점했다. 이어 2018년 4월3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백스전 5회 2사 만루에선 제이크 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밀어내기 점수를 줬다. 
올해 20년차로 커리어가 오래된 류현진이라 이런 기록이 아예 없을 순 없다. ‘제구의 마술사’로 불렸던 메이저리그 사이영상 4회, 명예의 전당 투수 그렉 매덕스도 23년 커리어 통틀어 만루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5개 허용했다. 몸에 맞는 볼로 인한 밀어내기 실점도 3번 있었다. /waw@osen.co.kr
LA 다저스 류현진이 3회 2사 만루에서 애리조나 제이크 램에게 밀어내기 볼넷으로 실점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2018.04.03 /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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