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지난 주말 시리즈였다. 고시엔 구장에서 주말 3연전이 펼쳐진다. 홈 팀 한신 타이거스가 히로시마에서 온 손님을 맞았다. 도요 카프와의 맞대결이다. (센트럴) 리그 1~2위 간의 만남이라서 관심이 높다.
그런데 시작부터 묘하다. 금요일(16일) 게임 1시간 전이다. 양 팀의 배팅 오더를 교환하는 순서가 됐다. 주심을 비롯한 4심이 홈 플레이트에 자리 잡는다. 이어 양 팀이 준비한 타순표를 제출한다.
KBO리그는 오더 교환을 코치들이 한다. 그러나 NPB는 감독이 직접 한다. 일종의 의식(儀式)이고, 팬에 대한 예의라고 여긴다. (야구 규칙도 그렇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감독이 직접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아무튼.
3연전 첫 경기 아닌가. 서로 악수와 함께 간단한 안부도 나눈다. 좋은 경기하자는 다짐도 한다. 심판진에게는 수고하시라는 인사도 전한다.
하지만 이날은 다르다. 왠지 분위기가 ‘쎄~’ 하다. 원정 팀 감독 때문이다.
히로시마 카프의 아라이 다카히로(48)는 뭔가 못 마땅한 표정이다. 서둘러 타순표를 내더니, 이내 돌아선다. 악수는 억지로 시늉만 한다. 상대 감독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덕분에 한신 사령탑 후지카와 규지(44)만 머쓱하다. 밝은 얼굴로 나왔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돌아서야 했다.

이튿날(17일)도 마찬가지다. 배팅 오더 교환은 또다시 썰렁한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 아라이 감독(히로시마)의 화가 난 표정은 여전했다.
짐작되는 이유가 있다.
보름쯤 전이다. 두 팀의 직전 대결 때 사건이 있었다.
한신 타자(사카모토 세이시로)가 타석에서 쓰러졌다. 히로시마 투수(오카모토 슌)의 공이 머리를 직격한 탓이다. 이른바 ‘헤드샷’이다.
그때였다. 한신 벤치에서 누군가 달려 나온다. 후지카와 감독이다. 잠시 타자를 돌보는 것 같더니, 이내 상대 벤치를 향해 맹렬한 분노를 터트린다. ‘당장 이리 와’라는 도발의 손짓도 날린다.
다급히 따라 나온 같은 팀 코치들이 말린다. 쓰러졌던 타자까지 일어서서 ‘그러지 마시라’며 붙잡는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린다. 얼굴이 붉그락푸르락한다.
관중석에서도 호응한다. 맞힌 상대를 향한 야유가 쏟아진다. 분위기는 점점 거칠어진다. 그라운드에 양쪽 선수들이 몰려나온다. 삽시간에 전시 태세가 된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한동안 이어진다.
그러나 다행이다. 사태는 곧 진정 국면을 맞았다. 가해자(투수)는 퇴장 조치됐다. 피해자(타자)는 큰 부상이 아니지만, 대주자로 교체됐다.

당시 스코어는 6-1이었다. 홈 팀의 승리가 확실한 8회 말이었다. 따라서 ‘헤드샷에는 어느 정도 히로시마의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후지카와 감독의 생각이었다.
마침 며칠 전에 NHK 방송도 이 문제를 다뤘다. 한신이 히로시마에게 맞은 사구의 숫자가 유난히 많다는 지적이었다.
어쨌든 경기는 이겼다. 그리고 신인 감독 후지카와는 이 사건으로 재평가가 이뤄졌다. ‘팀을 위해 필요한 행동이었다’, ‘리더다웠다’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반면 히로시마의 아라이 감독은 손해 본 느낌이다. 그래서 벼르고, 별러 다시 고시엔 구장을 찾은 것 같다.
“왜 그랬냐(오더 교환 때 인사하지 않았냐)?” 경기 후 기자들이 묻는다. 그러자 이런 답변을 내놓는다.
“나도 입장이 있다. 팀을 맡은 사람이다. 연배도 내가 위다. (예전 일을 지칭하는 듯) 속에 담아두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3연전 마지막 날에는 풀었다. 눈을 맞추고, 인사도 나눴다. 그 모습에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주변에서 보기 안 좋다고,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 불쾌하게 여기고, 걱정하는 팬들께도 죄송했다.” (아라이 히로시마 감독)
여기에 반해 후지카와 감독은 의연하다. 기자들의 물음에 즉답을 피한다. “그 얘기는 기자회견에 어울리는 내용이 아닌 것 같다. 팬분들도 계시고…. 그 질문은 삼가 주시면 감사하겠다”라며 말을 돌렸다.

내야수 출신 아라이 감독은 히로시마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현역 시절에는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2008년에는 FA 자격을 얻어 한신으로 이적했다. 2014년까지 7시즌을 뛰었다. 네 살 아래 후지카와가 마무리 투수로 활약할 때였다. (후지카와가 2013년 ML 진출할 때까지 5년간 팀 메이트였다.)
KBO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롯데가 삼성전에서 헤드샷을 맞아, 논란이 됐다. 김태형 감독이 격분해서 그라운드로 달려 나왔고, 코치와 선수들이 한사코 말리는 장면이 화제의 한 컷으로 돌았다.
공교롭게도 결과가 괜찮다. 헤드샷을 맞고, 여기에 화를 폭발시킨 감독과 팀이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 KBO의 롯데가 (하루동안) 2위로 올라섰다.
NPB도 비슷하다. 발끈했던 후지카와 감독의 한신도 그날 이후 1위로 올라섰다. 반면 선두였던 히로시마는 2위로 밀려났다. 아라이 감독의 ‘뒤끝 작렬’에도 여전히 성적은 회복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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