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찬바람을 맞고 좌절했지만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내야수 하주석(31)이 FA 설움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하주석은 23일 대전 롯데전에서 9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 2루타 포함 3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하며 한화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2연패 끊은 한화는 롯데를 3위로 밀어내며 이틀 만에 단독 2위를 탈환했다.
한화에 특히 중요한 승부였다. 12연승 이후 2승7패로 페이스가 한풀 꺾인 상황. 가파른 상승세를 탄 롯데에 2위 자리를 빼앗기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런 상황에서 하주석이 꽉 막힌 타선의 혈을 뚫었다.
다승 1위(8승)에 빛나는 롯데 선발투수 박세웅을 상대로 3회 첫 타석부터 하주석은 바깥쪽 직구를 밀어 좌측 2루타를 쳤다. 후속타가 터지지 않아 잔루로 남았지만 5회 1사 1,2루 찬스에서 하주석이 직접 타점을 올렸다. 볼카운트 1-2에서 4구째 바깥쪽 낮게 존을 벗어난 포크볼을 밀어쳐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었다. 1-1 동점을 만든 적시타. 이어 한화는 에스테반 플로리얼의 우전 안타로 만든 1사 만루에서 최인호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역전했다.

귀중한 승리의 발판이 된 하주석은 경기 후 “이번 시리즈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감독님께서도 경기 전 그런 말씀을 하셨고, 선수들이 조금 더 집중력 있게 할 수 있었다”며 “최근 잘 치고 싶고, 더 잘하려는 마음 강하다 보니 스윙이 커졌다. 강하게 치는 스윙이 많았는데 오늘 연습 때부터 가볍게 치려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천적’ 박세웅을 만난 것도 하주석에겐 좋은 반등 요소였다. 이날까지 박세웅 상대로 통산 타율 3할7푼5리(32타수 12안타) 2볼넷 7삼진으로 강세를 이어간 하주석은 “타이밍이 잘 맞는 투수들이 있는데 타석에서 자신 있게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됐다”며 “세웅이도 좋은 투수이지만 그런 부분을 의식 안 할 수 없다. 저도 마찬가지였고, 그런 걸 보면 야구는 멘탈이 되게 중요한 스포츠인 것 같다”고 말했다.
멘탈적으로 하주석은 확실히 단단해졌다. 지난겨울 하주석은 생애 첫 FA 자격을 얻어 시장에 나왔지만 찬바람을 맞았다. 25인 보호선수 외 보상선수가 발생하는 FA B등급이라 운신의 폭이 좁았다. 한화가 외부 FA로 유격수 심우준을 영입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사인&트레이드도 이뤄지지 않은 하주석은 한화와 1년 최대 1억1000만원 헐값에 FA 잔류 계약을 했다.

기대했던 FA 계약이 아니었고, 유격수 자리도 빼앗겼다. 1군이 아닌 퓨처스 팀에서 스프링캠프를 시작했다. 보통 선수라면 그대로 주저앉을 수 있었지만 하주석은 아니었다. 어린 후배들과 묵묵히 땀을 흘리며 때를 기다렸다. 4월초 안치홍이 복통 후유증으로 이탈했을 때 1군 콜업을 받았다. 7경기 타율 2할7푼8리(18타수 5안타) 1타점으로 제한된 기회 속에도 잘 쳤지만 안치홍이 돌아오고, 임시로 포수 3인 체제를 가동하면서 다시 2군에 내려가야 했다.
그래도 하주석은 마음을 다잡으며 퓨처스리그에서 맹타를 이어갔다. 지난 10일 고척 키움전에서 심우준이 사구에 의한 비골 골절로 최소 한 달 이상 빠지게 되자 하주석이 다시 1군 콜업됐다. 1군 복귀 후 9경기 타율 3할4리(23타수 7안타) 3타점으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전체 성적도 16경기 타율 2할9푼3리(41타수 12안타) 4타점 OPS .746. 득점권 타율 4할5푼5리(11타수 5안타)로 찬스에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화는 뎁스 강화를 위해 하주석과 FA 재계약을 했는데 그 효과를 지금 보고 있다. 하주석이 없었더라면 지금 위기를 헤쳐나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흔들리는 멘탈을 꽉 잡고 기회를 기다리며 준비한 하주석의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

일본 고치에서 치러진 퓨처스 스프링캠프 때 한화를 찾은 사에키 타카히로 타격 인스트럭터의 격려 속에 잃어버린 자신감도 찾았다. 하주석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특별한 주문을 하시진 않았다. ‘좋은 선수’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제가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는 “2군 캠프부터 시작하면서 올해는 1군이든 2군이든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처음에 2군 갈 때는 힘들었지만 시즌 전에 생각했던 부분이다. (2군에 가도) 빨리 리프레시해서 제가 해야 할 일, 제가 해야 할 야구에 집중했다”며 “팀 사정상 유격수가 아니라 다른 포지션으로 나갈 수도 있다. 다른 포지션이 쉽지 않지만 (지금 상황을) 인정하고, (욕심을)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FA 설움에도 좌절하지 않은 하주석은 한층 성숙해졌고, 위기의 한화를 구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처럼 하주석의 야구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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