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게임이 끝났다. 분위기가 좋다. 홈팀의 5-0의 완승이다. (23일 도쿄돔, 야쿠르트 스왈로즈 –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늘은 괜찮겠지.’ 기자들이 제법 모였다. 이긴 팀 감독의 자세하고, 깊이 있는 소감을 듣기 위해서다. 이윽고 승장(勝將) 나타난다. 대표 질문자가 막 문답을 시작하려는 찰나다.
인터뷰이(Interviewee)가 말문을 자른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이런 제안을 한다.
“오늘은 아카보시가 훌륭한 피칭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리드한 가이 군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러면서 뒤로 빠진다. 이어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의 포수가 나타난다. 아직도 보호장구를 해체하지 못한 상태 그대로다.
‘이건 또 무슨 일?’ 기자들이 술렁인다. 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주인공은 단상 뒤로 빠졌다. 대표로 마이크를 들고 있던 니혼 TV 우메자와 아나운서가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한다.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가이 ‘감독대행’에게 묻겠습니다.” 그렇게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년 차 감독 아베 신노스케(46) 얘기다. 본인 대신 포수 가이 다쿠야(33)를 마이크 앞에 세웠다. 완봉승을 리드했으니, 경기에 대한 브리핑을 잘해줄 것이라는 논리였다.
일본 매체들은 ‘사상 초유’ ‘전대미문’ ‘대행 회견’ 등의 표현을 썼다. SNS에서도 화제다. ‘벌써부터 감독 수업을 시키는 것인가’ ‘카이 임시 감독 재미있다’ 같은 반응들이다.

엉겁결에 나서게 된 ‘대행(?)’이다. 영 어색하다. 이런 설명이다.
“경기 끝나고 감독님이 ‘오늘은 나 대신 네가 인터뷰를 하라’고 하시더라. 한 번은 거절했는데,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왔다”라며 웃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질문을 막힘없이 술술 풀어간다. “(7피안타 완봉 투수) 아카보시가 워낙 좋은 투구를 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가능성이 큰 젊은 투수라서 앞으로 더 기대가 크다”라며 칭찬을 듬뿍 풀어놓는다.
경기 전반에 대해서도 맥을 짚어준다. “4회 타자 일순으로 4점을 뽑은 게 결정적이었다. 연속 안타 다음에 팀 배팅이 나와서, 주자를 3루까지 보낸 것이 좋은 흐름을 이어가도록 했다”라며 ‘대행’다운 평가였다.
잠깐이라도 감독직을 체험한 경험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남겼다. “감독님은 우리를 믿고 그라운드에 내보내고 있다. 그 신뢰에 부응하고 싶다. 감독이라는 자리가 정말로 엄청난 부담감을 느껴야 하는 곳인 것 같다. 그 마음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이 다쿠야는 13년 차 포수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12년을 보낸 뒤, 작년 12월 FA 자격으로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아베 감독은 인터뷰와 관련해서 악명이 높다. 부임 첫 해인 작년부터 패싱 논란이 있었다.
첫 번째가 8월이다. 당시 꼴찌였던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2-8로 완패하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구단 홍보 책임자가 머리를 조아린다. “죄송하게 됐다. 오늘은 회견이 없다.” 특별한 설명이나, 양해조차 없던 일이다.
올해는 더 나빠졌다. 벌써 두 차례나 패싱 했다. 4월과 5월에 각각 한 번씩이다. 크게 패한 뒤에는 이제 루틴이 됐다.
그러면서 자주 도마에 오른다. ‘젊은 감독이 벌써부터 그러면 어떻게 하냐’ ‘소통하는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 같은 지적들이다.
반면 이날의 ‘대리 인터뷰’는 즉흥적인 일탈로 받아들인다. 이적한 고참 포수와 팬들의 거리를 좁히려는 배려라는 해석 덕분이다. 자신 역시 포수 출신이다. ‘후계자 수업이 시작된 것이냐’라는 소리도 나온다.
이번 시도는 파격적이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아베 자신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는다. 뒤에서 끝까지 지켜봤고, 대행의 인터뷰가 마무리된 뒤에는 본인이 추가 질문을 소화해 완결 지었다. 따라서 기존의 패싱과는 엄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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