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6시의 남자'로 불리며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6시 내고향' 초대 MC 박용호 전 아나운서의 근황이 공개됐다. 두 번의 대통령상을 받으며 인생의 정점을 찍었던 그는 정치 입문 실패와 사기로 인한 재산 탕진, 그리고 아들의 비극적 사고까지 겪으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넘어야 했다.
박용호 전 아나운서는 '6시 내고향'의 초대 MC로 활약하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방송이 나가는 날이면 해당 동네가 '완전 잔칫날'이 될 정도로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그는 "지금도 어디 나가면 '6시의 남자' 박용호 아니예요? 그런다. 그 힘들다는 대통령상도 두 번이나 받았다"고 회상하며, 자신의 인생이 곧 '6시 내고향'이었다고 표현할 만큼 아나운서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30여 년간의 아나운서 생활을 통해 서울 강남에 집을 마련할 정도로 경제적 안정도 이뤘다.

그러나 그의 삶은 영광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2000년, 정치계의 부름을 받고 방송을 떠난 박용호는 "정서상 맞지 않으면서 실패를 경험했다"고 고백하며 뼈아픈 좌절을 겪었다. 정치적 실패와 더불어 사기로 인해 재산도 잃으면서 아픔을 겪었다. 방송 복귀도 쉽지 않아 그는 기나긴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가장 그를 아프게 했던 것은 둘째 아들에게 찾아온 비극이었다. 박용호가 '6시 내고향'을 진행하던 중 "둘째 아들 혼수상태"라는 쪽지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당시 고3 수험생이던 둘째 아들은 친구와 다투다 머리를 다쳐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3개월 후에야 의식을 되찾았지만 오른쪽 몸에 후유증이 남았다. 박용호는 "살 의미가 없다며 둘째 아들이 계속 죽으려고 했다. 그걸 말리느라고 가슴이 찢어졌다"고 돌아보며, 그 당시의 고통을 잊지 못했다. 둘째 아들은 긴 방황 끝에 현재는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박용호는 이제 고향인 강화도의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에서 초가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어 귀농한 지 15년째를 맞았다. 500평 규모의 밭에서 홀로 농사를 짓는 '베테랑 농부'로 변신했지만, 그의 삶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들이 남아있다.

가장 큰 고민은 가족이다. 세 명의 아들 모두 아직 가정을 꾸리지 못했으며, 이를 두고 "내게는 등에 붙은 혹이다. 좋은 배필을 만나서 아주 안락한 가정을 이루는 게 부모들의 바람인데 그걸 따라주는 아들이 한 명도 없다. 한숨만 나온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아내와는 현재 '따로 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아내는 주중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정도 시골집을 찾아온다. 아내는 남편이 혼자 사는 것이 미안하다면서도 "내가 여기서도 할 일이 있고 많으니까 아직은 혼자 잘 견디시고 어떤 때는 제가 못 해드리면 그런건 스스로 하시더라"고 말했다. 박용호는 아내에게 서울살이를 권유받았지만, "할 일이 정상적으로 있으면 가능한데 서울에 가도 괜히 거리를 돌아다닐 수도 없지 않냐"며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
아내 또한 "농사는 솔직히 너무 버거울 것 같다. 나이도 있고 그래서. 앞으로는 도회적으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시골 생활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박용호는 "대대로 수백 년 살아온 조상터를 처분하는 게 쉽지 않다"며 선뜻 서울로 올라갈 수 없는 이유를 밝혔다.

'스타 아나운서'의 영광부터 정치적 실패, 재산 탕진, 그리고 아들의 비극적 사고까지. 박용호 아나운서의 삶은 파란만장한 드라마 그 자체로 그려졌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이 노후를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짧은 기간을 그렇게 살다가 저세상으로 가야한다"면서도 현재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행복한 노후'의 해답을 찾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