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프로야구 관중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다시금 야구 붐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TV를 통해 본 전통 있는 고교야구 전국대회의 텅 빈 관중석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같은 스포츠 안에서도 이처럼 온도 차가 극명한 현실은 우리 야구계가 마주한 구조적 문제를 상징하는 듯하다.
지난 6월, 나는 고교야구 활성화를 위한 제언으로 “대전야구장을 전국대회 전용구장으로 활용하자”는 글을 썼다. 동대문야구장의 전설을 다시 한번 대전에서 재현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뜻밖에도 그 글은 많은 올드 팬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대형 화환 사업을 하시는 중앙대 출신 한 사장님은, 야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분으로서 “이제는 대학야구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며 간곡히 부탁하시기도 했다.
실제로 대학야구 관계자, 감독, 선수 부모님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다. 그분들의 하소연은 고교야구보다도 현실이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고교는 졸업 후 대학이나 프로에 진출할 기회라도 있지만, 대학 졸업 후 프로 지명이 되지 않으면 사실상 야구 인생이 끝나버리는 구조다.
현재 KBO는 각 구단이 드래프트를 통해 해마다 팀당 11명씩 총 110명을 선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대학 출신은 고작 20여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고교 졸업자다. 예전의 고연전 열풍을 주도했던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성균관대 같은 명문 팀도 이제는 한 해에 한 명 입단하기도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다. 매년 500여 명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절대다수는 졸업과 동시에 야구와 작별을 고해야 한다.
드래프트 시기도 문제다. 지금은 9월 중순에 진행되는데, 이 때문에 주축 선수들이 시즌 도중에 지명이 되면 이후 경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경기력 저하도 일어난다. 일본은 드래프트를 11월에 진행한다. 우리도 시즌 종료 후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학야구의 운영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선수들은 대부분 등록금을 스스로 부담하고 있으며, 2년제 대학팀의 확산은 학교 처지에서는 학생 수 확보를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합숙비, 전지훈련비, 장비 구입 등 모든 비용이 개인 또는 학부모의 몫이라는 점은 가혹하다. 유니폼만 학교에서 지원하고, 글러브나 배트는 선수들이 직접 마련한다. 지방 소도시로 이동해 경기를 치른다. 충북 보은이나 경남 밀양시가 대회 운영비로 1억7천~1억8천만 원씩 지원하고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이런 외부 지원 없이 대학연맹이 자체적으로 대회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장 큰 문제는 입장 수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팬들의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경기력은 고졸 유망주들이 프로로 직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중·장기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야구를 ‘직업’ 이전에 ‘교육’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다.
지금의 대학 선수들은 졸업 후 취업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는데, 고교 시절부터 수업을 거의 받지 못한 이들이 졸업 후 사회에 나가 적응하기란 매우 어렵다. 지금이라도 대학에서 자기계발에 집중하고, 성실하게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야구도 중요하지만,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공부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선수들과 지도자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한다.
다행히 최근 변화의 바람도 불고 있다. 30, 40대의 젊은 지도자들, 특히 고교 감독들 사이에서는 이제 ‘공부하는 야구인’의 필요성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최소 4시간의 오전 수업만큼은 철저히 지키도록 독려하고, 야구 외에도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학생선수들에게 단순히 승부를 넘은 더 큰 가치를 심어주는 일이다.
대학연맹 사무국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생존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300개 이상의 대학 동아리 야구팀을 관리하며, 순수 아마추어 대회를 준비하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대학야구가 캠퍼스 내에 다시 뿌리내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야구 문화의 저변 확대이자 지속 가능한 발전의 시작일 것이다.
다가오는 2027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충청권 일대에서 공동 개최될 예정이다. 대전, 청주, 충주를 연결하는 스포츠타운 벨트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충청권이 스포츠 산업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
끝으로, 최근 대학에서 선수 생활을 접은 한 축구선수의 사례를 전하고 싶다. 고교 시절에는 전국 ‘베스트 11’에도 들었던 유망주였지만, 여러 고민 끝에 2학년을 마치고 은퇴를 결심했다. 그의 어머니 요청으로 내가 축구 해설위원 신문선 교수와의 면담을 주선했는데, 신 교수가 한 말이 인상 깊다.
“그만두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영어 공부든 무엇이든 목숨 걸고 자기 개발을 해라. 결국 모든 건 본인의 정신자세에 달려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학생 선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야구 유니폼을 벗는 순간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글/ 김소식 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전 일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