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며칠 전이다. MLB 코리아의 공식 유튜브 채널이 새 영상을 업로드했다. 이런 제목이다. ‘이정후가 직접 밝히는 MLB vs KBO 차이! feat. 김병현 & 더스틴 니퍼트’.
거액(?)을 투자한 기획인 것 같다. BK와 니느님이 현지로 날아갔다. 코리안 빅리거들과 실제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리즈 형식이다.
이정후 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작됐다. 주로 BK가 묻고, 바람의 손자가 대답한다. 풀타임을 뛰어보니 힘든 점이 무엇이냐, 이동이나 시차는 어떠냐, 겪어본 투수들 공은 어떻게 다르냐. 등등의 대화로 진행된다.
역시 컨디션 관리에 대한 관심이 크다.
BK “우리 정후는 징크스나 뭐 루틴 같은 거 있나?”
정후 “운동장 가서 핫텁(온탕), 냉텁(냉탕) 왔다 갔다 하고, 케이지 들어가서 볼 치고….”
BK “아니 이걸 왜 물어봤냐 하면, 예전 스즈키 이치로 선수가 카레를 먹는 루틴이 있다고 들었는데. 난 그게 궁금하더라고. 이게 진짠가 아닌가. (제작진을 보며) 이거 MLB에서 확인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제작진 “카레를 먹는지 안 먹는지를요?”
BK “매일 카레를 먹는 루틴이 있다고….”
정후 “저도 들었습니다.”
BK “들었지?”
정후 “그것 또한 루틴이라고 들어가지고….”
옆에 있던 니퍼트도 눈을 크게 뜬다. “(한국어로) 아, 정말요?”
이치로가 누군가. (오타니 이전에) 아시아 출신 중 가장 성공한 메이저리거다. 그래서 ‘한국의 이치로’라는 기대 가득한 호칭도 붙여준다. 이정후뿐만이 아니다. 아버지 이종범도 그렇게 불렸다.
그러니 대충 흘려서 들을 얘기가 아니다. 카레만 먹고 그렇게 잘 됐다는데. 현역 51번도 솔깃한 눈치다.

카레의 전설은 대략 이런 내용이다.
이치로가 처음 미국에 진출했을 때다. 출근 전에는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메뉴는 한결같다. 아내가 만들어준 카레라이스다. 몇 년 동안 늘 똑같았다.
이유는 하나다.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똑같은 맛과 똑같은 양을 지킨다. 그래야 변함없는 몸 상태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즉, 이치로의 카레는 철저한 자기 관리의 상징인 셈이다.
이 전설은 우리만 알고 있는 게 아니다. 일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믿는다.
과연 그럴까. 지금부터 팩트 체크 들어간다.
일본의 마이니치 방송(MBS TV)에 ‘정열대륙(情熱大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흔히 말하는 관찰 예능이다. 이를테면 ‘나 혼자 산다’ 같은 방식이다.
작년 연말에 ‘이치로 편’이 방송됐다. 시애틀의 집으로 24시간 밀착 카메라가 붙었다. 그중 아침 운동을 마치고 구장으로 출근하는 장면이다. 차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 내용이다.
이치로 “(아침) 식사는 스스로 준비하고 있어요.”
제작진 “아침 겸 점심으로는 뭘(드시는지)?”
이치로 “요즘은 토스트를 먹어요. 토스트와 수프.”
이 말에 제작진이 의외라는 반응이다. “카레라이스 아닌가요? 그런 전설이 아직도….”
그러자 이치로는 ‘그건 또 무슨 소리?’ 하는 표정이 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이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생각이죠? (웃음) 10년도 훨씬 넘었어요. 요즘도 그 말을 많이 들어요. 확실히 자주 먹기는 했어요. 그랬는데, 매일 그것만 먹은 건 아니에요. 맥스 80(최대 80%)까지도 아닐 걸요.”
환상이 산산조각 난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1년을 365일로 치면 (카레는) 100끼도 안 먹었을 거예요. 아마 듣는 사람들은 1년 내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 편이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그랬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즉, ‘이치로의 카레’는 부풀려지고, 왜곡된 사실이었다. 가짜 뉴스라는 얘기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MBS의 ‘정열대륙’ 훨씬 전이다. 2008년에도 다큐멘터리 하나가 방송됐다. 공영방송 NHK가 제작한 ‘메이저리거, 이치로 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미국 진출 7년째(35세)였다. 이를테면 그의 황금기였다. 화면에는 집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담겼다. 여성 아나운서의 잔잔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시간은 12시 조금 전이다. 메이저 이적 7년째, 메뉴는 항상 아내가 직접 만들어준 카레다.”
이 대사를 뒷받침하는 현장의 대화가 이어진다.
제작진 “7년간 계속 같은 식사를 하시는지.”
이치로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카레 이외에 뭐가 있었나…. 기억나는 게 없네요. 다른 건 있을 수가 없어요.”
아마 이 장면일 것이다. 많은 팬들이 직접 봤다. 본인 입으로 하는 말도 들었다. 그러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물론 편집 과정의 문제일 수 있다. 앞뒤가 잘리면서, 잘못 전달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카레의 전설’은 10년이 훨씬 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바람의 손자는 어머니 도시락을 먹는다고 한다. 그게 훨씬 낫다. 카레에 대한 호기심 따위는 필요 없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만들어진 환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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