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투수 정우주(19)가 42분간의 우천 중단을 버텨내고 연장 혈투의 승리투수가 됐다. 정우주는 더그아웃에서 홀로 명상하며 변화무쌍한 늦여름 하늘의 괴팍함을 견뎌냈다. 19세 신인 투수라고 믿을 수 없는 침착함과 담대함을 보여줬다.
3일 대전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한화와 NC의 맞대결. 1위 탈환의 끈을 놓지 않은 한화와 가을야구를 향해 승부수를 던진 NC 모두 뜨거움 그 자체였다. KBO리그를 평정 중인 한화 슈퍼 에이스 코디 폰세는 선발로 나서 한 시즌 228 탈삼진 대기록을 만들어냈다. 폰세를 상대로 2회 3득점을 뽑아낸 NC 또한 불펜진을 총동원하며 맞불을 놨고 경기는 9이닝(정규이닝)에서 승부가 나지 않았다.

9회초 마무리 김서현을 투입해 NC 공격을 막아낸 한화. 연장전 돌입에 정우주 카드를 꺼냈다. 첫 타자 NC 김휘집을 상대로 정우주는 트레이드 마크인 직구만 4개를 던져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두 번째 타자는 올 시즌 재능이 만개하며 타격에 눈을 뜬 김주원. 그를 상대로 초구 슬라이더를 던져 헛스윙을 이끈 순간 하늘에서 요란스러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심판진은 지체 없이 경기 중단을 선언, 양 팀 선수들은 모두 더그아웃으로 철수했다.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가 식지 않게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더그아웃에서 대기를 시작한 정우주. 김휘집-김주원-최원준으로 이어지는 NC의 강한 젊은 타자들을 상대로 머릿속에 그려놓은 흐름이 공 5개 만에 끊어졌다. 기약없는 기다림에 정우주는 더그아웃과 라커룸을 잇는 통로에 놓인 간이의자에 홀로 앉아 명상에 잠겼다. 눈을 감고 수분을 보충하며 정우주만의 ‘우주’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비는 조금씩 잦아들기는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명상을 멈춘 정우주는 대기 중인 사진기자들에게 다가와 “비 예보가 계속 있나요“라며 정중히 물었다. 휴대폰으로 검색한 예보는 1mm 정도의 얕은 비. 결과를 확인한 정우주는 “별로 안내리네요”라며 더그아웃 밖을 살짝 나가보더니 또다시 기다림을 시작했다. 홀로 남은 정우주 곁에 살며시 다가온 이는 바로 김서현(21). 홀로 짓궂은 날씨와 싸우는 정우주 곁에 앉은 김서현은 담담하게 함께했다. 눈빛을 주고받고, 가벼운 몇 마디를 던지고, 기다리는 관중들을 위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면서.

마침내 비가 잦아들며 한화 그라운드 키퍼들이 톱니바퀴처럼 방수포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경기 재개의 공기가 대전 신구장에 퍼지기 시작하자 정우주는 보호대를 벗고 그라운드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방수포를 걷는 외야에서 달리고, 스트레칭하며 다시 몸을 뜨겁게 달군 정우주. 직구 9개로 3K 무결점 이닝을 만들어낸 정우주가 우천 중단 후 뿌린 첫 공은 119km 커브였다. 상대 방망이가 허공을 가를 수 밖에 없었다.


정우주는 50여분이 넘는 1이닝을 삼자범퇴로 틀어막았다. 이닝을 마치고 내려오며 땀을 쓱쓱 닦아낸 그는 짦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제서야 기나긴 1이닝을 버텨낸 긴장의 끈을 풀어놓는 19세 투수 정우주였다.
우천 중단 상황에서 한화와 심판진의 대처는 매우 기민했다. 심판진은 빠른 상황 판단로 중단, 철수, 시작을 결정했다. 한화는 잘 정돈된 메뉴얼을 바탕으로 방수포를 펴고, 접으며 기다리는 관중들의 기대에 보답했다. 마치 메이저리그의 우천 중단 후 재개의 상황을 보는 듯 했다.

ML 스카우터들 앞에서 무결점 이닝을 펼쳐 박수 갈채를 받은 정우주. 훗날 그가 더 큰 무대에서 악천후를 대처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19세에 이미 슬기롭고 담대하게 버텨냈다고 리포트 되어있지 않을까. /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