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영화만 찍다간 굶어 죽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 '어쩔수가없다' 팀의 간곡한 성토가 이어졌다.
17일 오후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약칭 BIFF)에서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 제공/배급 CJ ENM, 제작 모호필름/CJ ENM 스튜디오스)가 개막작으로 국내 첫 공개됐다. 언론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는 박찬욱 감독과 작품의 주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이 참석해 박가언 BIFF 수석프로그래머와 함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특히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박쥐',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작품마다 호평받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다. 이에 앞선 제 82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공식 초청을 받고, 지난 14일 폐막한 제50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신설된 국제관객상 첫 번째 수상작이 됐다. 더불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제장편 부문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돼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실직자'인 주인공 만수의 설정은 극심한 위기로 꼽히는 한국 영화계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찬욱 감독은 "관객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영화인들의 삶을 떠올리시겠나. 각자 자기의 삶, 자기의 직업이 먼저 떠오르실 것"이라면서도 "다만 저는 당연히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쉽게 감정이입을 했던 것이, 여기서 종이 만드는 일이 그렇게 엄청나게 중요하고, 대단한 일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데 주인공들은 자기 인생 자체라고 말하지 않나. 그런 것처럼 영화를 만드는 저로서는 또 영화라는 것도 어찌 보면 무슨 삶의 큰 도움을 주는 현실적인 일도 아니고, 2시간짜리 오락거리일 뿐이다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그런 일에 가진 것을 다 쏟아부어서 인생을 위해 통째로 걸고 일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쉽게 동화될 수 있던 것 같다. 그래서 제지업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이 인물에 대해 알 것 같은 기분이 든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박찬욱 감독은 또한 "지금 영화업계가 어렵고 우리나라가 조금 더 다른 나라보다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이 더딘 상태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기저기 다른 나라 사람들 만나서 물어보면. 그러나 영영 이런 상태에 머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저희 영화가 이 구렁텅이에서, 늪에서 조금 빠져나오는 데에 조금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라고 바람을 담아 덧붙였다.
이에 이병헌 역시 "베니스 그리고 토론토를 영화제 때문에 저희가 다녀오면서 그런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영화에서는 제지업이지만, 우리 업계에서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느냐 말씀들을 하시더라. 사라져가는 종이의 쓰임이 제지업의 어려움처럼 영화의 어려움도 있지만,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건 극장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이라는 곳이 어떻게 이 어려움을 타개하고 또 다시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장소가 될 수 있을까는 모든 영화인들이 생각하는 어려움일 것"이라고 거들었다. 또한 그는 "현실로 직접 피부로 느끼진 못하지만 AI의 문제도 후반부에 문제제기를 하는데 AI도 사실 배우들이나 감독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요소일 거다. 그런 지점에서 공통점을 저도 느꼈다"라고 밝혔다.
"이번 영화가 7년 만"이라는 손예진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자주 영화를 채울 수 있을까가 불안하다. 원체 영화 현실이 안 좋아졌다. 그래서 7년 만에 한 것도 더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박찬욱 감독님 같은 감독님들이 작품을 많이 만들어주셔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진 것 같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게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라고 말해 톱배우 손에진도 결코 영화 차기작이 쉽지 않은 현실을 강조했다.

박희순은 "나름 영화로 먹고 살았지만 이제는 영화만 찍었다간 굶어죽게 생겼다고 말한 게 현실인 것 같다"라고 솔직하게 밝히기도 했다. 그는 "영화를 사랑하지만 영화만 고집해선 어려울 정도로 영화산업이 안 좋아졌다. 박찬욱 감독님을 비롯해 영화인들이 힘을 내서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시면 관객 분들이 다시 영화를 찾아주시고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쩔수가없다’를 많은 관객들이 즐겨주셨으면 한다"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그런가 하면 이성민은 "범모 역할을 하면서 저를 되돌아본 적이 있다. 저희 같은 직업, 배우도 언젠가 대체할 수 있는 대단한 기술이 생긴다면 대체되지 않을까 하고. 그럼 저희도 직업을 잃을 거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도 같지 않을가 한다. 그런 두려움이 저희가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영화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극 중 실업자들처럼 그런 일을 겪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라며 AI로 배우가 대체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시사했다.
염혜란은 "영화산업이 위기인 건 맞는데 제가 이번에 박찬욱 감독님이랑 하면서도 영화의 즐거움, 영화의 참된 맛은 이런 게 아닐까 싶더라. 많이 보러와주시길 기대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정성과 시간을 쏟으면 알아주실 거란 생각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며 더욱 진심 어린 노력과 정성을 강조하기도.

나아가 박찬욱 감독은 "원작이 나온 게 1990년대인데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라며 과거에도 현재에도 실직의 위기는 분야를 막론하고 통하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그는 "어떤 소재는 처음 나왔을 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적어도 ‘도끼’라는 원작 소설은 시간이 흘러도 자기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어쩔수가없다'는 오는 24일 개봉하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오늘(17일)부터 오는 26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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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SEN 이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