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웅’ 고(故) 손기정 선생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이후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의 생애와 활동을 다룬 새로운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는 최근 한국체육사학회지 제30권 제3호에 「미디어로 재구성한 일제 말기 손기정의 생애(1936-1945)」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손기정 선생이 베를린 올림픽 이후 단순히 일본의 압력으로 인해 선수 생명이 멈춘 것으로 알려진 기존 이해를 재검토하고, 당시 미디어 자료를 통해 그의 활동을 다시 조명했다.
허 교수는 논문에서 “1936년부터 1945년은 손기정이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에 입학하고, 일본의 압력 속에 마라톤을 중단하고 사회인으로 살았다고 쉽게 해석된다. 하지만 미디어 기록을 살펴보면 올림픽 이후에도 결코 육상 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1940년 도쿄 올림픽을 향한 손기정 선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보도가 발견됐다. 1937년 1월 25일 자 도쿄 아사히신문은 아사히체육상 수상 연설을 전하며, 손기정이 “이 상을 고향으로 가져가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4년 뒤 도쿄 올림픽에서도 반드시 활약해 보이겠다”라고 다짐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해 10월 14일 조선일보 보도에서도 손기정이 메이지대 진학 후에도 올림픽 2연패를 목표로 체계적인 훈련을 이어갔으며, 1937년 11월 열릴 예정이던 메이지신궁경기대회 마라톤 풀코스 도전에 나설 계획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은 전쟁으로 인해 무산됐다. 허 교수는 “도쿄 올림픽 취소는 손기정에게 선수 은퇴를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이미 세계 정상임을 증명한 그에게 국내 대회 출전은 더 이상 의욕이나 가치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번 논문은 베를린 올림픽 이후 손기정을 바라본 일본과 조선의 시각 차이, 그리고 식민지 스포츠 스타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과 압박감도 조명했다.
허 교수는 “손기정의 삶을 단순히 ‘베를린 우승 이후 은퇴’라는 틀로 보는 것은 협소하다”며 “1936년에서 1945년까지 그의 행보는 당시 미디어 보도를 통해 확인되는 또 다른 차원의 스포츠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 10bird@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