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과 퇴마 없는 오컬트 영화가 등장했다. 배우 송지효의 기적과 김히어라의 저주의 등가관계라는 공식을 김병철을 통해 동전의 양면으로 만들어낸 '구원자'다.
영화 '구원자'(감독 신준, 제공 스튜디오플럼, 배급 마인드마크, 제작 메이데이 스튜디오, 스튜디오플럼, 공동제작 아이필름코퍼레이션, 그리다 스튜디오)는 축복의 땅 오복리로 이사 온 영범(김병철 분)과 선희(송지효 분)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이 모든 것이 누군가 받은 불행의 대가임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오컬트 영화다.
흔히 귀신, 구마, 퇴마, 사제나 무당 같은 신적 존재들이 등장하는 여타의 오컬트 영화와 달리 '구원자'는 미스터리 요소를 극대화시켰다. 특히 미지의 존재가 누군가에겐 이적을 행할 때 타인에게 불행을 내리는 식으로 기적과 저주의 등가 관계라는 나름의 공식을 성립해 세계관을 구축했다.


평범한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교통사고로 아들의 다리와 자신의 눈을 잃은 선희. 남편 영범은 아내와 아들에게 행복을 되찾아주기 위해 오복리로 이사한다. 그러나 축복의 땅이라는 수식어와 달리 오복리는 음습하다. 겉보기엔 한산한 시골처럼 보이지만, 이사 첫날부터 알 수 없는 소리가 영범의 머리를 울리고, 까마귀가 집을 떠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는 신앙인들로 보이지만 동시에 오직 기적만을 바라는 맹목적인 모습으로 광기마저 드러낸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노인(김설진 분)이 나타난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 암덩어리인 이 노인은 어느날 갑자기 영범의 차에 뛰어들었다. 의사로서 영범은 노인을 구해내고 신원불상의 오갈 데 없는 노인을 갈 곳을 찾을 때까지 창고에서나마 지내도록 조치한다. 그리고 영범과 선희 가족에게 '기적'이 나타났다. 잃었던 아들의 다리와 아내의 눈을 되찾은 것. 선희 모자는 순식간에 신의 선택을 받은 기적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같은 시각, 오복리에서 평화롭게 살던 춘서(김히어라 분)는 모든 것을 잃었다. 남편의 가정폭력도 버티게 했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 민재가 갑자기 걷지 못하고 또 눈도 못 뜨게 된 것. 누군가에겐 기적 같은 행운이, 누군가에겐 저주 같은 불행이 동시에 나타난 상황. 영화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상황에 연결점들을 교차적으로 등장시키며 인과관계를 설명해낸다.
이 과정에서 SBS 예능 '런닝맨'으로 친숙한 송지효는 눈 먼 선희를 맡아 친근한 이미지를 지워낸 열연을 선보인다. 아들과 자신에게 닥친 교통사고에 마음 아파하지만 가련한 여인이지만 내심 타인의 희생을 짐작하면서도 기적을 바라는 처절함이 '런닝맨'과 유독 대조돼 인상적이다.

첫 상업영화에 데뷔한 김히어라는 송지효와 대립각을 세운다. 선희의 기적이 춘서의 저주인 만큼 대조 효과를 통해 더욱 처절해 보인다. 악인은 아니지만 대립각을 세우는 존재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춘서의 상황이 마치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호평받았다가 '학폭 논란'으로 명성을 잃었던 그의 실제 과거사와 닮아 더욱 눈길을 끈다. 다행히 오해를 풀어낸 그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열연도 마찬가지다.
김병철의 영범은 아내와 자식에게 닥쳐온 행운에도 마냥 웃을 수 없다. 의사로서 그가 가진 의학적 지식이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게 하고. 무엇보다 타인의 불행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마침내 기적과 저주의 등가관계를 유추해낸 그의 선택이 영화의 극적인 반전을 완성시키며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바. 김병철에겐 데뷔작이나 다름 없는 영화 '알포인트' 이후 오랜만에 공포감을 선사한다. 대중에게 드라마 '도깨비'의 '파국이'로 인생 캐릭터를 각인시켰던 그가 이번엔 상황의 관찰자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주역으로 나서 관객의 시선으로 설득력을 얻어간다. 귀신도, 퇴마도 없는 미스터리 오컬트의 탄생은 자못 반갑다.
11월 5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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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튜디오플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