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은 '나다움'을 돌이키게 만든다. 당신이란 한 세계의 주인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바로 '너'뿐이라고.
'세계의 주인'(감독 윤가은, 제공/배급 바른손이앤에이, 제작 세모시·볼미디어)은 '인싸'와 '관종' 사이, 속을 알 수 없는 열여덟 여고생 주인(서수빈 분)이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한 뒤 의문의 쪽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우리들', '우리집' 일명 '우리' 시리즈로 연달아 호평받은 윤가은 감독이 지난 2019년 '우리집'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성별을 떠나 교우관계도 원만하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주인'은 이름처럼 주인공에 어울리는 소녀다. 쉬는 시간에도 수업 시간에도,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다. 웬만한 짓궂은 장난도 얼마든지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에너지의 소유자. 그러나 영화에서 처음이자 가장 강력한 거부권을 전교생 연명 서명에 꺼내들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때로는 '관종' 소리를 들을 정도로 누구에게나 웃으며 허허실실 원만한 소녀에게 단체 행동에 대한 거부라니,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주인은 굽히지 않는다. 그로 인해 익명의 존재로부터 의문의 '쪽지'가 주인에게 도착한다. "뭐가 진짜 너야?"라고. '세계의 주인'이라던 영화는 그렇게 주인이라는 소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방이 건넨 쪽지는 보는 이마저 도발하며 이야기를 순식간에 팽팽하게 당긴다. 이어 주인을 중심으로 그의 엄마 태선(장혜진 분)부터 문제의 서명운동을 주도한 반장 수호(김정식 분)와의 끊어질 듯 끊이지 않는 관계가 보는 이들을 밀고 당기며 주인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그 과정에서 주인은 모두의 이목에도 기꺼이 반대하는 소신을 잃지 않는다. 소녀의 첫 거부에 놀란 친구들도, 가족들도, 교사들도 긴장을 풀게 만들며 다시 어울리는 법을 찾아가면서. 그 어울림 속에 소녀는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길을 찾아간다. 정답은 없지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다움', 윤가은 감독은 섬세한 소녀들의 감정선을 가이드라인이라도 있는 듯 모난 데 없이 풀어내며 쪽지로 팽팽하게 당겼던 긴장감의 끈을 서서히 풀어간다.

다수의 영화가 스포일러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지만, '세계의 주인'은 유독 경계를 늦춰선 안 되는 작품이다. 한 줄 남짓한 로그라인도, 1분을 간신히 넘긴 예고편도 영화가 담는 진정한 이야기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꺼이 모르고도 찾아볼 가치가 있다.
기실 윤가은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현재 부인할 수 없는 거장 봉준호 감독이 기대주로 뽑은 인물이다. 그런 그조차 6년 만에 신작일 정도로 최근 국내 영화계, 극장가 등 산업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 적극적인 홍보 한 줄이 아까울 상황에도 윤가은 감독은 사전 언론시사회부터 참석한 취재진에게 직접 스포일러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작품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을 우려한 것과 동시에, 정보 없이 봐도 빠져들 수 있다는 확신을 담아서.

그 자신감에 '세계의 주인'은 믿음으로 보답한다. 윤가은의 6년은 결코 그냥 흘러가지 않았다. 기다림 만큼 영화 속 주인의 소신도 녹슬지 않고 견고하게 건설됐다. 다 보고난 뒤에 떠올릴 메시지도, 영화의 만듦새도, 한 줌의 불편함 없이 튼튼하다. 결코 자극적이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반전도 경종을 울린다. 충무로 다 죽었다는 말이 농담 이상의 무게감으로 횡행한데도. 영화가 보여준 주인의 세계만큼, '세계의 주인'이 나온 한국 영화도 아직 살아있다.
22일 개봉, 러닝타임 119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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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바른손이앤에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