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방송 시청 후 작성된 리뷰 기사입니다.>
‘순풍 선우용여’ 가수 양희은이 굴곡진 인생을 언급했다.
29일 배우 선우용여의 유튜브에서는 ‘선우용여 찐동생 양희은이 충청도에 오픈한 카페 최초 공개(K장녀 스토리)’란 영상이 공개됐다.


양희은은 최근 부여에 카페를 오픈했다. 어머니가 살아 생전 그린 그림들로 꽉 채운 카페는 1931년 지어진 고저택을 그대로 살려 내부에는 서까래가 남아 있는 등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했다. 어머니를 여읜 지 고작 2년, 양희은은 "뼈 마디에 어머니가 새겨져 있다"라며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표현했다.
양희은은 첫 딸로서 어머니에게 가진 연민과 애정을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제멋대로 이혼 때문이었다. 양희은은 “우리 엄마랑 아버지는 사이가 안 좋다. 이혼의 첨단이다. 1970년대에는 이혼이 없었다. 엄마가 화딱지가 나서 친정에 간다고 나왔더니 그 밤에 아버지가 새 여자 데리고 오더라. 아버지가 미쳤다”라면서 “그렇게 이혼이 되어버렸다. 한이 있다. 엄마께서는 ‘내가 참을걸’이러면서 한이 됐더라. 할머니 할아버지들 손 잡고 다닐 때마다 후회하더라”라며 어머니의 생을 안타까워했다.
선우용여는 “그놈도 없고 그년도 없어”라며 이미 다 흘러간 일이라고 위로했다. 양희은은 “그년이 그년이고”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는 "어머니를 자식 뒷바라지 하듯 했다"라며 설명했다. 그는 서른 살 나이로 암 수술을 한 후 불임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양희은은 그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식과의 연이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양희은은 “우리 엄마는 묵묵하진 않았다. 반도 조선, 명동에서 양장점을 했다. 가게가 불이 나면서 친구 부채 보증 선 걸 제일 친한 친구가 도망 갔다. 빨간 딱지가 붙었다. 기타 들고 명동을 나갔는데 이종환 선생 계실 때 송창식 선배가 노래 해보라고 해서 합격했다”라며 홀로 아이들을 기르며 가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무너지자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양희은은 “처음 본 사람한테 가불해달라고 했다. 이종환 선생이 이상하게 보는데 송창식 형이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 당시 4만 원을 줬다. 그 당시 공무원 월급이 6~7천 원이었다”라고 말했다. 서른한 살이 되어서야 그제야 자신의 돈으로 옷을 사 보았다는 양희은. 대중 가수로 전 국민이 그의 이름을 아는 것과 별개로 그는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서도 양희은은 “그때부터 학교 못 가, 연탄 없어, 쌀 없어. 나는 서른한 살 때 처음으로 내 옷을 사 봤다. 다 얻어 입었다. 큰딸로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다. 트랜지스타가 갖고 싶으면 아빠가 사주셨다. 미도파 백화점에서 브래지어나 팬티까지 사주셨다”라며 남부럽지 않게 크다가 한순간 힘들어졌던 것에 대해 말했다.

양희은은 “어떻게 가수가 되었냐고 하면 난 돈이 없어서 가수가 됐다. 동생 둘 학자금, 그게 없어서 노래를 한 건데, 그걸 뭐라고 미화시켜서 이야길 해야 해?”라며 “나는 서른 살에 암 수술하고 언제든 떠날 것처럼 살아야지, 내일 생각을 안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거기까진 나이가 필요하다. 나이들어 봐봐, 명품도 무거워서 싫다. 가벼운 데다 명품값을 통장에 넣고 다니면 된다. 앞날은 가면 가는 대로 끝이다. 그래서 정리를 빨리 하려는 거다”라며 인생을 통달한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가볍고도 무거운 철학을 전했다./osen_jin0310@osen.co.kr
[사진 출처] 선우용여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