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중훈이 에세이 '후회하지마'를 출간하며 데뷔 40년 연기자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4일 오후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에 위치한 정동 1928아트센터에서 박중훈의 에시이 '후회하지마'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 자리는 피아니스트 겸 작가 문아람의 진행 아래 박중훈이 책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후회하지마'는 박중훈이 지난 40여년 간의 배우 인생과 인간 박중훈으로서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배우 박중훈의 첫 번째 책이자 에세이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66년생인 박중훈은 지난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이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황산벌', '라디오스타' 등의 영화를 거치며 큰 사랑을 받아왔다. 책에서 박중훈은 '배우 박중훈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라고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작가로 불리니 어색하다"라며 웃은 박중훈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수많은 작가님께 너무 쑥스럽다. 이 자리에는 책을 쓴 사람이니 '작가'라는 말이 맞겠지만 제가 평생 살면서 한 권 이상 더 쓰겠나. 처음이자 마지막 책 같다. 물론 모른다. 자기 앞날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보니. 출판사에서도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았다. 받아들이겠지만 쑥스럽긴 하다. 이 자리에서는 '책을 쓴 작가'로 서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첫 책 '후회하지마'를 출간한 소감에 대해 "제가 처음 영화를 찍고 첫 영화 시사회를 한 게 1986년 3월이다. 그때 너무 신기하고 모든 게 새로웠다. 처음 하는 일에 설렘이 있지 않겟나. 뇌과학적으로 도파민이 많이 나온다고들 하는데 제 경우엔 너무 설레고 너무 좋은 행복의 도파민 호르몬이 나오는 것 같더라. 겸손의 차원이기도 하지만 부끄럽기도 했다"라며 "연기를 오래했기 때문에 제 연기의 호평, 혹평은 익숙한데 글을 쓰는 건 대필하지 않는 이상 본인을 숨길 수가 없다. 좋은 의미와 부끄러운 마음이 다 섞여서 설레기도 하다"라고 고백했다.
또한 "첫 부분에 제가 2000년도에 일주일에 한 번씩 1500자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 그때 참 오묘한 경험을 했다. 1500자를 일주일에 한 번 씩 썼는데 타자기(자판)를 치는 시간은 3~4시간 뿐이지만 마감을 하고도 일주일 내내 뭘 쓸까 생각했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흔한 말로 생각이 글로 정리가 되더라. 제 나이가 30대 중반일 때인데, 30대 중반에 치열하게 저를 생각한 경험이 저를 정리하게 해주는 큰 도움을 줬다"라며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건 막연하게 지난 수십년 동안 제 안에 굉장히 힘든 일이고, 그렇지만 쓰고난 뒤 수혜자는 저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다. 이번에는 1500자가 아니라 9만자 정도, 10만자는 안 됐다. 그 정도 양을 쓰다 보니 저로서는 어마어마하기도 하고, 쓰고 굉장한 경험이 됐다"라고 말했다.

과거 칼럼을 엮은 책 출간을 거절했던 박중훈. 이번엔 어떻게 책을 내게 됐을까. 그는 "배우의 특징 중 하나가 기록된다는 것이다. 영상으로도, 목소리가 기록된다는 거다. 디지털 AI 시대엔 영원히 남는 것이다. 당시에도 글은 수천년 뒤에도 후세가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게 저한테는 부담이 돼서 저같은 사람이 책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차인표 씨가 저보다 한 살 어린 후배인데 같은 스포츠클럽에서 운동을 한다. 어느날 갑자기 책 한권 쓰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 지나가는 말일 줄 알았는데 집요하게 제안을 하더라. 고민을 하다가 제 성격상 망설일 바엔 하자는 주의라 쓰게됐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영화는 제가 출연한 작품 중 제일 비싼 게 23년 전 기준으로 1000억원이 넘는 영화도 많이 찍었고, 200억, 300억 원 되는 작품도 많이 찍었다. 영화는 안 되면 그 돈을 아예 날리는 것인데도. 그런데 출판은 제가 살아온 산업에 비하면자금은 얼마 안 된다. 망한 영화도 정말 많았는데. 그래서 그 정도 돈이면 망해도 누구 한 사람 충격적인 일을 당하진 않을 것 같았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또한 "출간되면 아무래도 매대에 놓인 책들을 독자들이 선호하게되고, 출판되면 관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책은 관에 들어가도 살 수 있다. 영화는 개봉이 끝나면 볼 수가 없다. 극단적인 상업적인 면만 비교하면 흥업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영화가 냉혹했다. 그런 면에서 훨씬 더 여유롭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영화감독으로도 활약한 바 있는 박중훈은 "책이라는 게 영화 감독을 한다고 제가 시나리오 3편을 쓴 적이 있다. 흔히 픽션에도 작가의 세계관이 들어가겠지만, 창의력의 영역이라면 제 이야기는 자전적 에세이라 제 이야기를 제가 써야만 했다. 제가 5개월 뒤에 만 60세가 되는데, 20살에 데뷔해 40년이 되고, 10진법상 딱 떨어지게 됐다. 막연하게 글을 쓰려다 보니 그때 감성이 생각이 나더라"라고 회상했다.
이어 "제가 기억력이 뛰어나지 않고 보통 정도인데도 워낙 임팩트 있는 일들이 많아서 햇수는 물론 날짜까지 기억나는 게 많더라. 가장 감정적으로 놀라운 건 제가 목소리도 작은 편이 아니고 말도 자신감 있게 하는 편에 속하는데 상당히 자존감이 낮은 부분이 있다. 스스로 책망도, 자책도 많이 한다. 제가 저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그런데 책을 쓰다 보니 AI로 과거의 자신을 껴안는 것처럼 과거의 내 자신이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흔한 표현으로 '힐링이 됐다'는 건 진부한 것 같고 제 자신에게 선물을 준 것 같다. 자책하며 살아올 일만은 아니라고. 지금은 책 쓰기 전보다 자존감이 조금 더 올라갔다. 제 스스로 더 밝아지고"라며 웃었다.
집필 과정에서 대관령 산기슭에 들어가 칩거하듯 집중한 것으로 알려진 박중훈. 그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용평 리조트 안에 제가 집이 있다. 23년 됐다. 용평 리조트라고 하면 기름껴 보여서, 대관령 기슭이라고 했다. 제가 기슭이라고는 안 했는데 출판사에서 기슭이라고 해서 사색하는 인간처럼 보이더라. 용평 리조트는 너무 '나 거기 집 있지' 느낌이지 않나"라고 웃으며 고백했다.
그는 이어 "제가 묵는 집이 단지 내에서도 산 바로 밑에 있다. 가장 높은 곳에, 뒷문을 열면 산이 손에 잡힐 듯한 곳이다. 워낙 사람이 없어서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다. 배부른 소리일지는 몰라도 저처럼 알려진 생활을 오래한 사람은 익명성이 부럽다. 알아봐주셔서 고맙기도 하지만 아무도 나를 의식하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게 쓰고 싶다. 그래서 이번엔 거기서 썼다"라며 "친한 감독, 작가님들을 보면 스타벅스에서 음악도 듣고, 소음이 있어야 글이 써진다는 분도 많은데 저는 조금만 소리가 나도 집중을 못하겠더라. 그래서 대관령 ‘기슭’에서 밤에 귀뚜라미 소리도 거슬려서 실리콘 귀마개를 양쪽 귀에 꽂고 적막한 채로 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박중훈은 "이번에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내가 빠져나가서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 새벽 2~3시에 화장실을 가면 이 얼굴이 내 얼굴이 맞나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게 나르시시스트라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다. 그런 느낌도 이번에 느꼈다"라며 "지금도 그런 게, 제가 훌륭한 감독님과 촬영, 편집, 음악을 함께 해서 영화에 제 모습이 나오면 많이 소개하고 싶고 당당한데 이번엔 오로지 펜과 종이 하나로 제 이야기를 쓴 거라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쑥스럽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책 제목 '후회하지마'와 관련해서 그는 "20대 때 많이 쓴 말이다. 요즘 성인지 감수성과 안 맞지만 제가 남자 3형제로 자랐다. 그러다 보니 사나이, 남자는 이런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지금 말하면 큰일난다. 그렇지만 저의 20대는 남자로 태어나 후회는 없고 반성만 있는 거라고 많이 했다. 반성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가는 미래지향적인 생각이고, 후회는 과거집착적인 비굴한 태도라고 말하고 살았다. 내 인생에 후회는 없다고. 정말 멋지게 산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나이 되고 보니 너무 후회되는 게 많다. 이렇게 생각해도 후회가 많은데 후회한다고 생각하면 더했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래서 양면적이다. 후회하지 않으려 했으나 너무 후회가 많다. 하늘에서 만약 만화같은 소원을 주신다면, 한 달만 주시면 원하는 과거로 돌아가서 그런 일 안 하거나 잘못한 사람에게 사과하고 싶다. 제가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해서 연쇄살인이라거나 비도덕적인 일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며 "누구나 욱하고 급한 면도 있으실 텐데 저는 진짜욱했다. 피가 펄펄 끓었다. 20대 때는 아주 거칠었다. 물론 아무런 원인 제공도 안 한 사람에게 거칠면 못된 사람이지만 나한테 시비가 걸려오거나, 주먹이 아니더라도 그런 게 걸려오면 좀 못 본 척도 해야 하는데 예전엔 일일이 응징하고 다녔다. 한 마디도 안 졌다. 결국 이겼을 거 아니냐. 지금 생각하니 너무 부끄럽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박중훈은 "이런 건 후회가 안 된다. 제가 소위 할리우드 영화를 처음 찍었다. 우리나라 토종 배우로는. 그게 2001년도였다. 요즘이야 전세계가 K브랜드를 주목하지만 당시엔 언론에서도 할리우드 진출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밑에 있다는 게 기저에 깔린 이야기다. 그때 막 개봉 전에 할리우드 신예 외국 배우로는 핫했다. 그때 에이전시 계약 같은 것들을 지금 지나고 보니 그렇게 안 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더라. 그래도 그건 후회가 안 된다. 그 당시 최선을 다했다"라고도 덧붙였다.

이에 박중훈은 후회 없이 '후회하지마'에 과거 논란을 빚은 '대마초 논란'까지 가감없이 담았다. 박중훈은 "자기 얘기를 할 때 용비어천가만 쓰면 믿음이 안 가겠더라. 그렇다고 추악한 얘기를 다 할 필요는 없겠지만, 저한테는 대마초 사건이 지금 80년대생, 90년대생에게는 기억이 안 날지 몰라도 굉장히 큰 사건이었고, 소회를 밝히는 게 이 책의 신뢰도를 더 높여주겠다 생각했다. 결국 과거는 제 것이었다. 잘한 일도, 못한 일도 다 제가 했던 일이다. 그걸 지금 이 나리가 돼서 잘 회복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오그라들 수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말이 시멘트가 콘트리트가 될 때는 100% 시멘트면 부러진다. 거기에 자갈과 모래가 섞여야 굳건한 콘크리트가 된다. 완벽한 사람이 있곘나. 실수 안 한 사람이 있겠나. 저는 그런 실수를 이겨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그런 게 저한테는 자갈과 모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다시 반복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지난 실수도 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며칠 뒤면 정확하게 데뷔 40년이 된다. 30년을 배우로, 10년을 영화감독으로 살았다. 감독은 1편이지만 두 번째 영화가 계속 안 되는 동안도 감독으로 살았다. 제 스스로의 진정성을 좀 표현한 것 같다. 한번 해보겠다는 게 아니라는 게 스스로 납득이 됐다. 코로나19 때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배우를 하고 싶다. 제가 글을 쓰며 잘못 생각한 게 손흥민 선수는 토트넘에 있으면 다른 팀에는 못 들어가지 않나. 그런데 배우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유연하게 생각하면 좋았을 텐데 감독을 하면 배우를 끊었다. 결코 병행, 집중을 못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두 번째 감독 영화를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제가 감독한다고 절규해봐야 현실적 드라마가 없을 것 같다. 영화를 10년 넘게 못하다 보니 굉장히 연기를 하고 싶다. 연기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기가 막힌 연기로 모두를 보낸다는 게 아니라 진짜 마음에 있는 연기를 과장하지 않고 해볼 마음이 생겼다"라며 배우로서 욕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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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SEN 최규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