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섭(30, 전북 현대)의 '인간 승리' 스토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가 전북 현대의 통산 10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꿈만 같은 순간을 완성했다.
전북 현대는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36라운드에서 대전 하나시티즌을 3-1로 꺾었다. 일찌감치 조기 우승을 확정한 전북은 승점 75(22승 9무 5패)가 됐다.
후반 11분 송민규가 박진섭의 택배 크로스를 받아 선제골을 터트렸다. 그는 팬들과 함께 '셀카 세리머니'를 펼치며 기쁨을 만끽했다. 다만 전북은 후반 26분 송민규의 핸드볼 반칙으로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에르난데스에게 동점골을 실점하며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전북이었다. 후반 45분 이동준이 강력한 헤더로 득점하며 전주성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후반 추가시간 이승우가 페널티킥으로 득점하며 경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는 유니폼을 벗어던진 채 깃발을 들고 관중석 앞을 거닐며 팬들을 열광케 했다.
종료 휘슬이 불린 뒤엔 전북의 통산 10번째 우승 트로피 대관식이 진행됐다. 주장 박진섭과 거스 포옛 감독을 시작으로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렸고, 샴페인을 터트리며 축제를 즐겼다. 지금까지 차지한 10개의 트로피를 모두 진열한 뒤 팬들과 기쁨을 함께하기도 했다.


박진섭의 '인간 승리' 스토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단단한 수비로 대전 공격을 잘 막아냈고, 정확한 크로스로 송민규의 선제골을 도왔다. 후반 45분엔 최우진에게 백힐 패스를 내주면서 이동준의 역전골 기점 역할까지 해냈다. 공수 양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제 박진섭은 생애 첫 우승을 넘어 K리그1 MVP까지 넘보고 있다. 이미 포옛 감독은 그의 꾸준한 활약과 리더십을 극찬하며 MVP 후보로 제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우승 프리미엄까지 붙은 만큼 지금으로선 가장 유력한 MVP 후보 1순위다.
박진섭의 성장기를 보면 더욱 의미가 크다.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어릴 적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프로에 직행하는 대신 대학 축구계에 입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격수였던 박진섭은 2017년 내셔널리그(현 K3리그) 실업팀 대전 코레일 입단 테스트를 통해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박진섭은 K리그2 안산 그리너스로 이적했고, 여기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꾸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로는 탄탄대로였다. 박진섭은 대전에서 맹활약하며 K리그2 베스트 11에 뽑혔고, 2022년 전북에 합류하자마자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와일드카드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고, 2023년 A매치에 데뷔한 뒤 카타르 아시안컵에도 출전했다.

2025년엔 K리그1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전북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박진섭.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다. 내가 꿈을 키우게 해줬던 구단에서 주장을 맡고, 열 번째 별을 내 노력으로 전북에 걸맞은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뜻깊다. 아직까지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라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또한 박진섭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우승한 게 아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다 도와준 덕분이다. 공을 바치고 싶다"라며 "소름이 돋았다.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내가 꿈꿔왔던 순간이고 장면이었다는 걸 한 번 더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꿈꿔온 장면을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었다. 앞으로 축구 인생에서 정말로 잊지 못할 한 순간"이라고 되돌아봤다.
그는 "나라는 선수의 스토리를 보면 힘든 시기에 있는 선수들도 나를 보면서 한 줄기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히 이룰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내가 그걸 증명한 선수"라며 "나를 보면서 꼭 힘든 시간을 이겨내길 바란다. 꼭 K리그1에서 우승을 맛볼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는 선수가 누군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제2의 박진섭을 기대했다.

박진섭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소감에 대해선 "생각보다 무거웠다. 팬분들이 축하 분위기를 너무 좋게 만들어주셨다. 평생 잊지 못할 한 장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라며 "외국 팀 우승했을 때 영상을 좀 봤다. (손)흥민이 형이 트로피 들어 올리는 것도 한 번 봤다. 근데 생각해봤자 그날 내 느낌대로 가는 게 가장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 그렇게 했다"라고 밝혔다.
전북 출신 이재성의 축하 연락도 받았다. 박진섭은 "재성이 형이 계속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승 확정하고도 연락이 왔다. 대표팀에서 만날 때마다 꼭 우승하면 좋겠다고 했다. 언제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한 존재다. 대표팀에서 계속 언제 전북으로 돌아올 거냐고 묻는다. 근데 애매모호하게 답하더라. 그래도 오긴 올 거라고 했다. 약속 지킬 것 같다"라며 웃었다.
지난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의 아픔을 딛고 K리그1 최초의 '라 데시마'를 달성했기에 더욱 의미가 큰 전북의 우승이다. 박진섭은 "다들 뭔가 전북이니까 '당연한 결과'라고 얘기한다. 전북이 이 히스토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들었을 거다. 나도 올해 우승 경쟁을 하면서 정말 쉽지 않다고 느꼈다. 여태까지 이 역사를 이룬 선배들과 전북이라는 팀이 정말 대단하다고 또 한 번 느꼈던 시즌"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눈물은 참은 박진섭이다. A매치 데뷔 때도 눈물은 흘리지 않았던 그는 "사실 오늘 울컥했다. 그런데 (최)철순이 형이 눈물을 많이 흘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라도 눈물을 흘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꾹 참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MVP 수상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완벽한 크로스로 공격 포인트까지 추가한 박진섭은 "자주 나오지 않는 크로스 상황이었다. 분기별에 한 번 나오는 상황었다. 내 어시스트로 민규가 골을 넣어 승리할 수 있었기에 기분이 좋다"라며 "오늘 크로스를 보고 MVP 투표 좀 해주시면 좋겠다. 수비수가 그런 크로스하긴 쉽지 않다. 감안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미소 지었다.
전북 선수들도 박진섭을 응원 중이다. 그는 "아직 오피셜로 난 건 아니지만, 거의 암암리에 정해진 분위기다. 선수들이 꼭 내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해줬다. 나도 받았으면 좋겠다"라며 "진우는 뭔가 좀 착잡한 기분인 것 같긴 하더라. 그래도 진섭이 형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단 진우를 득점왕 만들어주는 게 목표"라고 다짐했다.
박진섭은 MVP뿐만 아니라 베스트 11도 노리고 있다. 그는 "우리가 올해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전북의 최소 실점과 우승 프리미엄을 기대한다. 우승은 진짜 어렵다. 많이 감안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라며 "올해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미드필더 부문으로 나가면 좋겠지만, 구단과 감독님이 판단해서 가장 유력한 포지션으로 내보내지 않을까 싶다"라고 밝혔다.
/finekosh@osen.co.kr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전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