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마지막 보루가 한순간에 무너졌을 때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오래 기다리며 버틴 한 골키퍼의 성장기였다. 주장 이창근이 수원FC와의 25라운드에서 슈팅을 막다 손등뼈가 골절되며 전열에서 이탈하자 황선홍 감독의 고민은 깊어졌다. 대전의 후방 안정감을 절반 가까이 책임지던 핵심이 빠진 만큼 대책이 필요했다.
황 감독은 고민 끝에 26라운드 광주FC전부터 이준서를 선택했다. 2021년 입단 후 줄곧 백업으로 머물렀던 그에게 찾아온 첫 굵직한 기회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부담감부터 앞섰다. 집중력이 흔들렸고, 광주전 패배에 이어 FC안양전까지 2-3으로 무너지며 두 경기 연속 실점폭이 커졌다. 팀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그때 라커룸에서 들려온 오재석의 단호한 한마디가 상황을 바꿔놓았다.

“준서는 아직 K리그1 승리가 없다. 오늘을 계기로 다 같이 도와주자".
짧았지만 울림이 컸다. 이준서는 “연패로 모두 다운된 상황이었는데 형의 말이 마음을 세게 찔렀다. 그때부터 나도 정신을 바꿔 먹었다”고 털어놨다. 동료들도 이를 계기로 다시 모였다.
이준서의 길은 늘 순탄치 않았다. 오산고와 동국대에서 ‘미래형 골키퍼’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대학 진학 초반 부상이 찾아오며 축구를 접을지 고민할 정도로 흔들렸다. 그때 조용히 손을 내민 사람이 동국대 안효연 감독이었다. 축구 기술을 넘어 선수의 내일을 고민하며 곁에서 버텨준 존재였다. 이준서는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못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감독의 조언과 신뢰 덕분에 그는 다시 일어섰다. 부상에서 복귀한 뒤 동국대의 춘계·추계 연맹전 우승, U리그 왕중왕전 준우승을 이끌었고, 골키퍼상과 우수선수상을 받으며 대학 무대 최고 클래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다시 자신을 증명한 뒤 K리그 무대를 두드렸다.


절망 직전에서 이준서를 붙잡아 세운 건 대학 시절 안효연 감독의 신뢰였고 프로에서 그를 밀어준 건 기다려준 대전이었다. 한때 축구를 포기할까 고민하던 선수가 이제는 대전 후반기 반등의 중요한 축으로 서 있다. 천천히 성장한 골키퍼가 마침내 자리 잡기 시작했다. / 10bird@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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