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만리장성을 넘으라는 소리다. 한국농구 최고 문제는 시스템의 부재다.
전희철 임시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은 오는 28일 오후 8시 30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FIBA 농구월드컵 2026 아시아지역 예선 B조 1차전에서 중국을 상대한다. 대표팀은 경기를 마치자마자 귀국해 12월 1일 원주에서 중국과 리턴매치를 갖는다.
대표팀은 25일 안양체육관에서 가진 평가전에서 정관장에게 67-81로 졌다. KBL 최고선수들에 일본프로농구에서 활약하는 이현중(25, 나가사키)까지 가세했는데 어떻게 질 수가 있을까. 대표팀 선수들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농구는 비디오게임과 다르다. 좋은 선수들만 모은다고 곧바로 좋은 팀이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선수들이 조직력을 맞추고 팀워크를 다질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지난 2024년 1월부터 대표팀을 이끌었던 안준호 감독은 8월 아시아컵 8강 탈락 후 성적부진을 이유로 재계약이 불발됐다. 농구협회의 새 감독 선임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KBL 1,2위 감독 전희철, 조상현 감독이 총대를 맸다. KBL과 EASL을 뛰는 두 감독에게 삼중부담이 가해졌다.
대표팀 선수들은 20일까지 KBL경기를 뛰고 21일 진천선수촌에 소집됐다. 실질적으로 손발을 맞춘 기간은 단 3일이다. 25일 연습경기 한 번 뛰고 26일 바로 중국으로 출국한다. 현지적응을 마치자마자 28일 본 경기다.
제아무리 세계최고 명장이 한국대표팀에 온들 이런 스케줄로는 도저히 한 팀을 만들 수가 없다. 하물며 만리장성 중국을 두 번 이기라니.

정관장을 상대로 대표팀은 공수에서 손발이 전혀 맞지 않았다. 감독이 바뀌면서 그 동안 공유했던 전술과 패턴 등 모든 틀을 새롭게 짜서 짧은 시간에 선수들에게 주입해야 한다. 프로농구 최고선수들이 모여도 결코 쉽지 않다.
이번 대표팀에 김보배처럼 새로 뽑은 선수도 있다. 강상재, 이원석, 안영준처럼 오랜만에 다시 온 선수도 있다. 이현중, 이승현, 이정현, 하윤기 등 핵심들은 건재하지만 그럼에도 큰 혼란이 야기됐다. 선수들이 공수에서 호흡이 맞지 않아 계속 실책을 연발하는 모습이었다.
조니 오브라이언트와 브라이스 워싱턴이 동시에 뛴 정관장은 최고의 연습파트너였다. 조직력이 떨어진 대표팀은 정관장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문유현과 박정웅도 대표팀 형들을 상대로 파이팅이 넘쳤다. 뮨유현은 친형 문정현에게 앤드원을 주고 분하다는 모습도 보였다.

경기 후 전희철 감독은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도 시간이 너무 없다. SK에서도 쓰는 패턴이 30개가 넘는다. 대표팀에서는 공수에서 딱 6개씩 가르쳤다. 그마저도 선수들이 다 습득하지 못했다. 연습경기를 최소 두 번은 하고 가야 하는데…선수들을 가르쳐도 막상 경기에서 다 딴 것을 하고 있다. SK에서 이렇게 했으면 무조건 야간훈련”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다른 국가대표팀도 주어진 환경은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해결법이 다르다. 일본은 성인대표팀은 물론이고 연령별 대표팀까지 모두 똑같은 전술과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상비군도 지속적으로 뽑아서 대표팀에서 가르친다. 큰 대회가 없어도 정기적으로 모이는 방식이다. 그중에서 누구를 뽑아도 비슷한 경기력이 나온다. 선수가 대표팀에서 어떤 농구를 할지 이미 명확하게 알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래 선수들에게는 대표팀에 간다는 것 자체가 큰 동기부여가 된다.

우리와 상대할 중국은 무려 19명의 선수들을 미리 뽑아 캠프를 차리고 자체경쟁을 시켰다. 우리처럼 부상자가 많아 겨우 12명 뽑아가는 수준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22일 베이징 플라이 드래곤스와 연습경기도 가졌다. 한국과 준비과정이 다른데 팀의 완성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전희철 감독은 “지난 아시아컵 8강전을 보고 일단 전력분석을 했다. 나머지 정판보, 저우치, 장젠린 같은 새로 합류한 선수는 따로 영상을 봤다. 이 선수들이 어떻게 나올 것이라는 예상으로 대응책을 짰지만 솔직히 붙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고 토로했다.
중국은 아시아컵 베스트5 왕준제(20, 샌프란시스코대)가 여준석(23, 시애틀대)처럼 미국대학농구에서 뛰어 빠졌다. 하지만 궈스창 감독이 일관되게 팀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 가장 무섭다. 한국은 중국과 2연전을 마치면 코칭스태프가 또 물갈이 된다. 기말고사 3일 앞두고 벼락치기 하는 학생에게 전교 1등 하라는 식이다.

한국이 월드컵에 가려면 중국과 2연전에서 최소 1승 1패는 해야 된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서 최고 잘하고 큰 선수를 뽑아갔는데 전 포지션에서 중국이 7-8cm는 더 크다. 준비도 중국이 더 많이 했다.
전희철 감독은 “그래도 한가지 희망을 봤다. 노림수가 있다. 베이징에 가서 승부를 던질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임시 감독에게 엄청나게 막중한 짐이 주어졌다. 중국전에서 패배한다면 그 책임 또한 임시 감독이 짊어진다.
설령 한국이 중국에게 2연승을 거둔다 해도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다. 농구후진국 한국의 시스템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농구관계자는 "KBL도 아쉽다.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바란다면 리그일정을 조정해서 최소 일주일 정도는 훈련하게 만들어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한 조의 일본과 대만 모두 최근 전력이 급상승해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대만은 외교성공으로 미국출생자 제레미 린의 동생 조셉 린을 국내선수신분으로 뛰게 한다. 한국은 여자농구 키아나 스미스의 특별귀화가 불발됐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