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수없이 마운드에 올랐지만 이날만큼은 느낌이 달랐다. 삼성 라이온즈 투수 최초 영구 결번의 주인공인 ‘끝판대장’ 오승환이 선수 아닌 시구자로 마운드에 오른 소감을 전했다.
오승환은 27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시구자로 나섰다. 아들 서준 군과 함께 마운드에 올라 팬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했다.
시구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오승환은 “항상 다른 사람의 시구를 지도하기만 했지, 제가 직접 시구자로 나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시구 선배인 아들 서준이와 함께 마운드에 올랐다”고 웃어 보였다.

이어 “일단 공을 패대기치지 않아 만족스럽다. 선수 시절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면서 “오늘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제 시구에 이어 인터뷰까지 하게 돼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승환의 시구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가 있다. 올 시즌 35세이브로 이 부문 1위에 오른 삼성 마무리 김재윤이 오른쪽 전거근 부상으로 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오승환이 시구가 아니라 9회에 등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반응까지 나왔다.
오승환 역시 후배의 부상 이탈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그는 “김재윤이 올 시즌을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잘 알고 있다. 세이브 1위에 올랐지만 홈경기 성적에 대한 아쉬움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포스트시즌에서 그 아쉬움을 만회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알기에 부상 소식이 더욱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록 플레이오프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선수들과 함께하면서 경험 많은 선배로서 여러 조언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운드를 떠났어도 후배들을 향한 애정은 여전했다. 오승환은 포스트시즌 기간 대구의 한 호텔에서 합숙 중인 삼성 선수단을 위해 호텔 1층 카페에 상당한 금액을 미리 결제했다.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이 부담 없이 커피와 빵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깜짝 선물이었다.
오승환은 “오늘 오전 선수단 숙소 근처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나눠주며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날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단 2안타에 그치며 패한 후배들을 향해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어제는 안타 2개밖에 치지 못하고 졌지만 오늘 오전 선수들의 얼굴을 보니 다들 밝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힘을 실었다.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구원 등판을 준비하는 ‘푸른 피의 에이스’ 원태인을 향한 믿음도 확고했다.
오승환은 “원태인은 기본적으로 가진 능력이 뛰어난 선수다. 어떤 상황에 나가더라도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며 “올 시즌 기대만큼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워낙 승부욕이 강한 선수라 포스트시즌에서 이를 갈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래 강심장을 가진 선수다. 중요한 순간에도 충분히 잘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는 마운드 위가 아닌 그라운드 밖에서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 오승환은 오히려 선수 시절보다 긴장감이 더 크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직접 마운드에 서 있을 때보다 밖에서 야구를 지켜보는 게 더 떨린다. 관중석에서는 야구장 전체가 보이니 여러 상황이 머릿속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어 “마운드에 있을 때는 오직 타자와 포수에게만 집중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지켜보는 입장이 되니 오히려 더 떨리더라”고 웃었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삼성의 뒷문을 지켰던 ‘끝판대장’. 이제는 마운드 밖에서 후배들의 선전을 응원하며 또 다른 방식으로 삼성과 함께하고 있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