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아이 배현성·노윤서는 어른 박지환·최영준의 선생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5.02 12: 29

[OSEN=김재동 객원기자] 흔히들 자식 걱정에 대해 말한다. 건강한 게 제일이고, 착한 게 다음이고, 공부 잘하는 게 마지막이라고. 사실 아픈 자식 지켜보기가 얼마나 힘들 것이며, 나쁜 길로 빠진 자식은 또 속을 얼마나 할퀼까. 공부 못하는 거야 앞의 두 경우에 비하면 소소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자식 걱정은 비단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인권과 호식’ 에피소드가 그렇다고 말해준다.
순대 파는 정인권(박지환 분)의 아들 정현(배현성 분)과 얼음 파는 방호식(최영준 분)의 딸 방영주(노윤서 분)는 고3 같은 반 친구다. 영주와 현은 전교 1, 2등이고 전교 회장·부회장이며 반장·부반장이기도 하다. 집도 연립주택 위·아래층 산다.

두 아이는 건강했다. 동네 사람들 길 막고 물어봐도 다들 착하다고 평할 아이들이었다. 공부까지 잘해 둘 다 서울대를 사정권에 두고 있다. 당연히 호식과 인권의 자랑거리다. 둘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두 아이의 양양할 전도를 기대했다. 푸릉마을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은 영주 걱정·현이 걱정일 정도로 아무 문제도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둘이 그냥 친구가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실이 영주 뱃속에 들어섰다는 점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 호식도 인권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아이들은 아기를 포기하지 않겠단다. 인권이 현을 두들겨 패도, 호식이 영주 앞에서 자해를 해도 아기에 관한 한, 서로에 관한 한 아이들은 포기를 몰랐다. ‘쟤가 내가 아는 내 새끼 맞나?’싶게 만드는 강경함 앞에서 호식과 인권은 어쩔 줄 몰라한다.
문제는 또 있다. 한때 절친이었던 호식과 인권이 이제는 마주치기만 하면 앙앙불락하는 원수같은 사이라는 점. 호식은 인권에게 대놓고 “내가 미쳤냐? 네 씨를 낳게?”라는 막말을 서슴치 않을 정도다.
여기엔 아무도 몰랐던 둘만의 사정. 혹은 인권마저 몰랐던 호식의 사정이 있다. 서로가 몇 번인가 서로의 목숨마저 구해줬던 관계가, 그래서 돌쟁이 아들·딸 두고 “사돈 맺자”던 사이가 이렇게 틀어진 것은 인권이 무심히 던진 돌이 호식의 심장을 관통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도박에 정신 팔린 호식에 지쳐 영주 친모가 도망간 날, 호식은 배곯은 영주를 데리고 인권을 찾아 도움을 청했고 인권은 그런 호식을 향해 “딸 앞세워 앵벌이 하니 좋냐? 이 개 그지 새꺄!”란 막말로 친구의 가슴을 헤집어 놓았었다.
욕을 입에 달고 다니던 깡패 시절, 인권 딴엔 도박쟁이 호식에게 정신 차리라고 한 소리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인권의 의중은 성공했다.
믿었던 친구의 비수 같은 말 한마디에 호식은 정신을 차렸고 정은희(이정은 분)의 도움을 받아 과거를 청산하고 건실한 아버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가지, 가슴 한켠 지워도 지워지지 않던 생채기는 인권에 대한 증오란 흉터로 남았다. 이후 호식은 사사건건 인권의 일이라면 쌍지팡이를 들었고 인권 역시 그런 호식에 대한 적의를 키워왔던 것이다.
그런데 사돈이라고? 이제 나래가 얼추 다 자라 둥지를 떠나 활개 치고 날아오를 내 딸, 내 아들의 깃을 마지막에 꺾어버린 것도 분통 터질 일인데 저 악연과 또 사돈관계로 맺어지라니.. 호식과 인권은 도저히 아이들의 바람을 접수할 수 없었다.
아기를 지우라며 인권이 건넨 돈뭉치는 다시 한번 호식의 트라우마를 헤집었고 둘은 피 터지는 주먹다짐을 나눈다. 결과는 전직 깡패 인권의 폭행으로 끝나고 주먹으로도 해묵은 감정을 털어내지 못한 호식은 선생님 면담 후 따라나온 영주가 “너무 미안해. 아빠 외롭게 해서. 아빠는 이 세상 나밖에 없는데”라며 호소해도 끝내 외면한 채 돌아선다.
한편 물렁한 호식을 믿을 수 없는 인권은 모텔을 찾아 영주를 강제로 끌고 나와 병원으로 가려 하고 그 모습을 목격한 현은 인권을 밀쳐내며 “난 아빠가 평생 창피했다”는 속내를 뱉어내고 돌아선다.
그렇게 충격받은 인권에게 이번엔 호식이 달려들어 귀를 물어뜯는 등 2차 난투를 벌인다. 그리고 그 여파로 끌려간 경찰서 유치장에서야 그간 이해 못했던 호식의 적의가 결국 제 탓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돌을 던졌더라도 맞는 개구리는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날 순대를 삶기 위해 집을 나서던 인권은 계단에서 굴러 혼절하고 그 요란한 소리에 나왔다가 쓰러진 인권을 발견한 호식은 인권을 병원으로 옮긴다. 인권은 심각한 당뇨증세를 보이고 있었던 것.
은희로부터 인권의 당뇨를 전해 들은 현은 아빠의 순대공장을 찾고 그런 현을 향해 인권은 “내가 깡패짓해 속 끓인 내 어멍, 그리고 네 어멍한테는 내가 진짜 미안해. 근데 너한테는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돼려고 열심히 살았어. 너는 세상 아무 것도 없는 나한테 그 어떤 것 보다 자랑이었어. 근데 이 아빠가 쪽팔려?”라며 울분을 털어놓고 현은 무너져내리는 인권을 부둥켜안고 “잘못했어요”라며 사죄한다. 그리고 그런 두 부자의 모습을 빗속에서 호식이 지켜본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자식 겉 낳지 속 낳는 것 아니라는 말처럼, 자식이 도통 이해 안가는 판단을 내릴 지라도 질 수밖에 없는 게 부모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이던 시절 그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늘상 그렇듯 더 사랑하는 쪽이 지기 마련이다.
다행인 건 ‘아이들은 어른들의 선생’이란 말도 있다는 점. 현과 영주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삶의 고달픔을 꿋꿋하게 견뎌내며 자신들의 꿈과 사랑,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권과 호식이 과거 아버지가 되고도 도달하지 못했던 어른의 세계에, 또 내 아기를 지켜내고 책임지겠다는 부모의 세계에 이미 발을 들여놓고 있다. 그리고 결국 호식과 인권의 덜 성숙한 우정도 복원시켜 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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