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마더스 클럽’의 아이들이 ‘튼튼한 개구쟁이’가 되길 바라며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5.06 14: 34

[OSEN=김재동 객원기자] 아이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놀고 싶은 것도 참고 애를 써 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자꾸 더 하라고 한다. 아이는 느꼈다. 나는 엄마의 행복을 바라는데 엄마는 나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5일 방영된 JTBC 수목드라마 ‘그린 마더스 클럽’은 마음을 다친 아이들의 이야기를 펼쳐냈다. 마침 어린이날인데 드라마 속 엄마를 향한 아이들의 열애는 화답을 받지 못했다.
이은표(이요원 분)는 아들 정동석(정시율 분)을 영재발굴 방송프로그램인 ‘영재판정단’에 출연시킨다. 출연 이유를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동석은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요”라고 답한다. 동석의 활약으로 동석의 팀은 우승을 차지한다. 방송출연을 우려했던 아빠 정재웅(최재림 분)을 포함해 모두가 행복했다.

자신의 힘으로 어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동석의 충족감은 금방 사라졌다. 놀고 싶은데 놀지도 못하고 일정은 점점 빡빡해져만 갔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근데 나는 맨날 공부하는데 동주는 왜 맨날 놀아?” “동주는 애기잖아!” 아니다. 애기라면 내가 애써 만든 레고를 가지고 놀며 “공부나 하셔”라고 비웃을 리 없다. 그리고 애기라도 내가 “내꺼 갖고 놀지마”라고 몇 번 주의를 주는데 못들은 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동주가 맨날 노는 걸 억지로 이해 못할 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맨날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될 이유가 이해되는 건 아니다. 한가지 더. 엄만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맨날 동주(이채현 분) 편만 든다.
변춘희(추자현 분)의 자녀 영빈(김서준 분)·유빈(주예림 분) 남매도 마음을 다치긴 매일반이다.
영빈은 안그래도 여동생 유빈에 치어 주눅 든 판에 영재반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자신 때문에 기가 죽은 엄마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미안해요.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나 땜에 돈 많이 쓰는데 뭐하나 똑바루 하는 것도 없구. 난 너무 머리가 나쁜가 봐요. 엄마 나 땜에 불행하잖아.” 자책의 구멍 속으로 스스로를 욱여넣는 일이 영빈이 할 수 있는 전부다.
동석의 등장 전까지 1등을 도맡아 하던 유빈은 상태가 좀 더 심각하다. 동석이 미워 깜찍한 거짓말로 성추행 사건을 조작하더니 스스로에게 불리한 기억들을 왜곡해 버린다. 영재원에도 합격했고 경시대회에서도 대상을 탄 것으로 스스로를 세뇌시킨다. “난 뭐든지 1등이잖아. 그래서 엄마 나 땜에 행복하지?”묻는 유빈의 천진한 모습이 춘희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엄마들은 자식의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녀 마음의 고삐를 옥죈 채 자신들이 아는 지름길로 몰아간다. 하지만 그 지름길이 맞기는 한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고전적인 선호직업 의사, 변호사만 해도 세대간 위상이 판이하다. 예전 경시받던 직업들이 각광받는 현실은 도처에서 발견되어진다. ‘사회는 학벌’이란 한때의 지상명제도 쇠락한 지 오래다. 돈이 아니라도, 지위가 아니라도 행복을 보장해 주는 가치역시 무궁무진하다.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확실할 수 있는 현재의 행복마저 포기시키는 행위는 부모라도 해선 안 될 일이다. 오히려 “엄마 아빠 근력 있을 때 행복해라. 큰 다음에 너희들 행복은 너희가 알아서 찾고”하는 자세가 맞지 않을까?
재능 계발은 좋은 일이다. 그 재능을 꽃피워 인생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하지만 그 재능이 주변의 과한 기대를 불러모으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불행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면, 그리고 그 악순환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미성숙한 어린아이라면 그 재능은 비극이 될 지도 모른다. 실례로 주변의 추앙을 받는데 익숙했던 유빈은 분명 재능있는 어린이지만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지 않은가.
대한민국에서 극성 교육열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부터 교육은 가난을 벗어던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여겨졌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개천표 용’의 에피소드가 흔하게 회자됐고 없는 살림에도 내 자식 개천표 용 한번 만들어 보자는 교육열로 한반도는 늘상 뜨거웠다.
그런 와중에 70년대를 관통한 광고카피가 하나 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故 박노식-박준규 부자가 동반 출연해 화제를 모은 영양제 광고카피다. 당대의 달뜬 교육열에 일침을 가한 이 문구는 2022년에도 여전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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