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한지민-김우빈 사랑, 편견이란 장애극복이 관건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5.23 18: 58

[OSEN=김재동 객원기자] “설령 서로에 대한 해묵은 이해로 맺어진 사람들일지라도 매번 서로의 우정을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설파한 말이다.

22일 방영된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14화는 ‘은희와 미란’의 남은 이야기와 함께 ‘영옥과 정준 그리고 영희’의 에피소드를 다뤘다.
‘은희와 미란’의 에피소드에선 쌍소의 앞 문장이, ‘영옥과 정준 그리고 영희’의 에피소드에선 뒷 문장이 시사적으로 다가온다.
은희(이정은 분)와 미란(엄정화 분)은 30년 지기지만 은희는 진심을 털어놓고 말할 용기가 없었고 미란은 비언어로 말하는 은희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오만한 화법으로 은희를 대했다.
결국 그들은 30년을 대화했지만 그 세월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를 획득하진 못했다. 오히려 오해가 쌓여감에 따라 같이 해서 행복했던 추억들조차 같이 해서 괴로웠던 기억에 밀려 흐릿해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30년을 지내 온 관성으로 만나고, 관성으로 “의리!”를 외치는 그녀들의 몸짓은 공허했다. 아니 미란은 진심을 담았을테지만 은희의 구호에 진심이 없는 탓에 공허해진 모양새다.
은희의 진심은 학창시절부터 지속된 미란의 오만한 혓바닥에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다. “얻어먹는 주제에 쏘세지 타령은..” “얘는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애” “이깟 생선 내가 다 사줄게” 등의 언어 폭력은 미란에 대한 은희의 자존감을 한없이 갉아먹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은 은희로 하여금 “미란이 같이 이기적인 년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일기에 적어놓게 하였고 그 내용이 미란 눈에 들며 관계의 종지부를 찍는 듯 보였다.
지내온 세월만큼은 거짓이 아니라서 30년 지기의 공백에 갑자기 휑해진 은희는 서울 미란의 마사지 샵을 찾고 둘은 손님인양 주인인양 스킨십을 나누며 해묵은 감정을 털어낸다. “너만은 내게 만만한 년으로 남아달라”는 미란의 요구를 은희 역시 “다시 싸가지 없이 굴면 머리채를 휘어잡겠다”는 대꾸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새로이 시작하는 우정은 서로를 상처 주지 않고 예의 바르고 다정하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형태로 쌓여갈 모양이다.
한편 영옥(한지민 분)의 다운증후군 쌍둥이 언니 영희(정은혜 분)가 제주를 찾았다. 영옥에게 ‘결혼 전제 교제’ 얘기를 꺼냈다 본전도 못건진 정준(김우빈 분)은 공항까지 쫓아왔다가 영희를 만난다.
당황하고 놀라 제대로 인사조차 못나누는 정준. 영옥은 그런 정준을 향해 ‘그럼 그렇지!’ 싶은 냉랭한 눈길로 “다운증후군에 대해 검색해 보던가”란 비아냥을 남기고 영희와 떠난다. 영희 역시 자신을 보고 놀란 정준이 맘에 들지 않아 “만나지 마!”라 어깃장을 부리고..
푸릉마을 공동작업장에 등장한 영희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옥의 사정을 알고 있던 해녀 삼촌 춘희(고두심 분), 혜자(박지아 분)는 뒷담화를 물리치고 영희를 반긴다. 그런 환대에 영희는 영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틈에 섞여 이내 청각 장애를 가진 별이(이소별 분)와 친구가 된다.
뒤늦게 영옥을 따라잡은 정준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영희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건넨다. “동생 영옥 누나와 사귀는 정준입니다”라고.
영희를 삼촌들 틈에 남겨두고 영옥과 마주한 정준은 영희와의 만남에 대해 솔직히 놀랐고 다운증후군을 처음 접했으며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배운 바가 없어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 당황했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영옥은 12살에 부모마저 잃었다며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죽을 때까지 내가 영희를 부양해야 된다는 뜻”이라며 놓아줄 때 떠나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정준은 요지부동이다. 영희의 존재가 헤어질 이유는 되지 못한다며 “잘 봐, 내가 누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라고 영옥의 손을 꼭 잡아 끈다. 그 다짐에는 부모와 동생과 주변의 모든 반대를 헤쳐나가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장애는 낯설다. 낯선 것은 편치 않다. 하지만 모든 낯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친숙해진다. 정준의 동생 기준(백승도 분)은 같은 화에서 달이(조혜정 분)에게 청각 장애가 있는 별이에 대한 연정을 고백했다. 시간이 숙성시킨 사랑이다.
낯선 것이 어디 장애뿐일까. 모든 첫 만남은 낯설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쌍소의 말은 진리다. 선 낯도 자주 보면 친숙한 낯이 되고 불편함은 시나브로 편해지기 마련이다. 다만 선입견과 편견이 친숙해지길 거부하게 만드는 또다른 장애가 되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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