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 김시은(24)이 정주리 감독의 새 영화 ‘다음 소희’로 칸 국제영화제의 무대에 서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앞서 ‘협상’(감독 이종석)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적은 있지만 주연을 맡은 것은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김시은은 25일(현지 시간) 칸 해변에 마련된 영진위 부스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감독님에게 영광스럽다는 표현은 안 했지만 제가 소희를 연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에 감사하다. 근데 제가 캐스팅되지 않았어도 이 영화는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 제작 트윈플러스파트너스㈜·크랭크업필름)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여고생 소희(김시은 분)가 겪게 되는 사건과 이에 의문을 품는 형사 유진(배두나 분)의 이야기. 김시은이 소희 역을 맡아 도전적이고 밝은 고등학생의 모습에서, 콜센터 취업 후 사회생활의 이면을 맛보게 된 절망적 상황을 연기로 풀어냈다.
김시은은 “제가 영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1부, 2부로 나뉘어 있다는 것에 구조적으로 재미를 느꼈다. 고등학생이었던 소희가 현장실습을 나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1부인데, 그 과정에서 소희가 심리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충분히 녹아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이 잘됐으면 싶었다”며 “특히 메시지가 뚜렷한 영화인 거 같은데 제가 캐스팅이 되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세상에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감독님이 제게 ‘같이 하자’고 해서 크게 놀랐다.(웃음) 캐스팅이 되고 나선 제 목소리로 소희를 잘 표현해보자 싶었다”고 오디션을 거쳐 소희 역할을 맡았다고 밝혔다.

이어 김시은은 ‘본인이 왜 캐스팅된 것 같은가’라는 물음에 “저도 감독님에게 왜 저를 캐스팅하셨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려고 한다. 처음에 감독님과 연기적인 것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첫 미팅에서 떨렸지만 많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그때 감독님이 저를 소희라고 느꼈던 거 같다. 소희를 연기하면서 부담을 안 느꼈다면 거짓말이고 소희가 느끼는 감정을 진심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촬영 당시 다짐한 생각을 밝혔다.
“저도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많이 접하고 있다고 느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 얘기도 제가 접해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다시 찾아보게 됐다. 제가 큰 힘이 되진 못 하겠지만 무언가 작은 힘이 되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다음 소희’는 올해 열린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현지 시간으로 25일 오전 11시 칸 에스페이스 미라마르 상영관에서 첫 공개됐고, 같은 날 오후 공식 상영을 통해 또 한 번 전 세계 관객들을 만났다.

“제가 칸영화제에 오게 됐다고 했을 때 ‘정말 말도 안 된다’ 싶었다.(웃음) 가족들은 너무 좋아하셨다. ‘좋은 기회니까 많이 보고 느끼고 즐기고 오라’고 하셨다”며 “첫 시사를 칸에서 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좋다. 앞으로 제 인생에서 또 이런 경험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칸에서 남은 일정이 짧지만 많이 배우고 즐기려고 한다”고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김시은에게 ‘무대인사 멘트는 준비해왔느냐’고 묻자 “제가 ‘다음 소희’를 소개할 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을 무대인사 할 때 했다”고 답했다.
이어 김시은은 “‘이렇게 긴장이 안 되도 되나?’ 싶다. 멘탈을 붙잡으려고 노력해서 그런 거 같다. 떨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영화를 같이 보니 느낌이 또 다르더라.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도 같이 있어서 그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웃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콜센터 이야기다보니 외국인들은 공감이 안 될 거라 예상했는데 영화를 잘 봤다고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관객들의 반응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녀 역시 칸에서의 공식 상영을 통해 영화를 처음 접했다.

김시은은 “(한국에서 먼저 볼 수도 있었는데) 감독님이 왜 첫 시사를 칸 극장에서 보게 하셨는지 알겠다. 극장 스크린과 사운드로 들으면서 조금 더 몰입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영화를 본 게 극장이어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김시은은 “이렇게 의미 있는 얘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게 하고 싶다. 칸에 오면서 한국영화를 외국인들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영화 작업을) 절대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라며 “물론 소희를 연기하면서 어려운 감정이라 어려웠다. 초반에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을 했는데 나중에는 소희의 마음이 전달이 되더라. 제가 소희가 되면서 심리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감독님은 ‘현장에선 너가 소희지만, 현장이 아닌 곳에서 소희가 아니어도 된다’는 맥락으로 말씀을 해주셨다. 그 한마디에 심리적으로 해소됐고 저와 소희를 분리하려고 했다”고 촬영기를 떠올렸다.
소희는 힙합댄스 연습실에 주기적으로 나갈 만큼 꿈과 열정이 많은 소녀였지만, 졸업을 앞두고 하청업체 콜센터로 취업하면서 삶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콜센터 직원으로 변신하기 위해 목소리톤과 호흡, 억양을 연습했다는 김시은은 “제가 직접 콜센터에 가서 들어보는 경험을 하진 못했다. 그래서 다양한 매체들의 영상을 참고했다. 목소리 톤을 습득하려고 노력해서 많이 반복해서 들었다. 개인적으로 콜센터 직원과 통화할 때 주의 깊게 들었고, 부모님이 콜센터 직원과 통화하게 될 때 스피커폰으로 같이 들으며 공부했다”고 했다.

김시은은 소희가 콜센터 직원으로서 점차 익숙해지는 모습에도 차이를 뒀다. “소희가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는 일부러 책을 읽는 것처럼 연기했는데 이미 연습은 많이 해두었던 상태였다. 이후에 소희가 능숙해졌을 때는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연기했다”고 자신만의 노력을 전했다.
소희 역을 소화한 이후 콜센터 직원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는 그녀는 “그동안 콜센터 직원들과 통화할 때 제가 무례하게 대한 적은 없었지만 이 영화 이후에는 ‘오늘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는 인사를 하게 됐다. 쉬운 말이지만 그런 말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힘이 될지 느꼈다. 물론 그들만큼은 제가 힘든 것은 아니지만 소희를 연기하면서 간접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더 잘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김시은은 평소 선망하던 배우 배두나(44)와 같은 작품에 출연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배두나 선배님과 호흡을 많이 맞추지 못해 아쉽다. 연기 조언도 구하지 못했는데 선배님이 현장을 이끌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어려운데 그 부분에 있어서 선배님이 하시는 걸 보고 배우려고 지켜봤다. 덕분에 현장은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게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사람 사는 얘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다. 어떤 목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생각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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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트윈플러스파트너스·키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