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아이유’가 아닌 배우 이지은이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통해 첫 상업영화에 도전했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 지난달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식 상영을 진행하며 처음으로 관객들과 만난 가운데, 8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에 이지은은 “내일 개봉이라서 떨리는 게 없지 않아 있다. 칸에 가서 제 영화를 관람했었는데, 영화제에서 먼저 출품된 만큼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시고 평이나 후기를 남긴 걸 봐서 그런지 반 정도는 이미 개봉한 느낌도 있다”며 “인생 첫 (상업) 영화 개봉이라 떨리는 기분은 숨기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앞서 드라마 ‘프로듀사’,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등을 흥행시키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던 이지은은 ‘브로커’로 상업영화 데뷔와 동시에 칸 무대를 밟는 영광을 얻었다. 이지은은 “모든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갔다 온 건지 잘 모르겠다”며 “여기가 칸인지 한국인지 모를 정도로 바쁜 일정이라 다녀온 지 며칠 지났지만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전했다.
극중 이지은은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두고 간 미혼모 소영 역을 맡았다. 소영은 마음의 상처가 있지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다는 점에 있어서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은이 연기했던 지안과 닮은 부분도 있었다. 이지은은 “제가 아주 많이 표현을 하는 연기보다는 절제하는 쪽의 연기가 조금 더 결이 맞는 것 같다. 평상시 개인적인 삶을 살 때도 많이 드러내기보다는 속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더 편하지 않나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도 그렇고 초반에는 지안이와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감독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가장 큰 차이점은 지안이가 표현을 거의 안 하는 인물이라면 소영이는 참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아주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감독님도 ‘나의 아저씨’를 보고 저를 캐스팅 한 것도 맞으니 지안이에서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은 가져오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너무나 극명하게 다른 부분들에서는 제가 그동안 보여드리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감독님도 확실히 지안이와 다른 표현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소영이는 많이 생각하고 말하는 캐릭터는 아니라 생각해서 직설적으로 바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욕설 연기 장면에 대해서는 “주변의 욕 전문가들에게 따로 자문을 구하진 않았다. 스스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 앞에서 욕을 했다. 가장 객관적인 관객이 되어 주셔서 ‘어때? 어색한 부분 있으면 얘기해줘’라고 하면서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매니저 앞에서도 ‘진짜 욕한 것 같아?’라고 연기를 보여줬다. 매니저분들은 ‘진짜 욕하는 것 같아 무서웠어!’, ‘씨를 여기 한번 넣어봐’라고 구체적인 피드백도 해주셨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소영은 아이 엄마, 성매매업소 여성 캐릭터 등 이지은에게 있어서 경험해보지 못한 설정을 많이 가진 인물이다. 그는 “출연을 결심하고 나서 대본 분석하고 어떤식으로 표현할지 생각하는 과정에서는 제가 경험하지 못한 설정이 어느 때보다 많이 있어서 어려운 부분 분명히 있었다”면서도 “결국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감정의 영역이 비슷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아이 낳아본 적 없었으니 엄마나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언니라거나 주변 분들한테 ‘임신할 때 어땠어’, ‘힘든 순간은 언제야?’, ‘아이 낳고 힘들어서 울어본 적 있어?’, ‘그럴 땐 가장 힘들었거나 원망 됐던 건 어느 쪽이야?’ 이런 걸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처음에 받았던 대본에서는 소영이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고. 이지은은 “감독님이 소영이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살아온 과정을 속 시원하게 얘기했다는 전제하에 인터뷰지를 주셨다. 대본을 봤을 때보다 그 인터뷰지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오히려 대본에서는 소영이가 스스로를 연민하는 장면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 크게 힘들었다거나 어두웠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장면은 크게 없었는데, 그 인터뷰지에서 조금 더 사실적으로 소영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표현이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연 내가 이걸 표현할 수 있을까?’, ‘나보다 짧은 인생에서 더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부담도 들었다. 소영이가 안쓰러웠던 순간은 스스로에 대한 연민 크지 않다는 지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연민적인 부분이 있는데, 스스로를 연민할 여유조차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게 느껴져서 안쓰러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소영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어려운 질문이다. 살아보지 않은 삶이기 때문에 감히 어떤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아주 단순하게 힘내라거나 응원한다거나 이런 말 자체가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조심스러운 생각을 전했다.

이지은은 시나리오를 읽고 연기하기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장면에 대해 “쉬운 장면은 사실 없었는데, 영화적으로 가장 클라이맥스일 수 있는 ‘태어나줘서 고마워’ 신이 고민이 많았다. 모두에게 중요한 신이었기 때문에 NG내면 안된다는 기본적인 부담감과, 불이 꺼진 상태에서 거의 목소리로만 전달돼야 해서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 다른 버전도 준비해갔지만 거의 첫 테이크에 오케이 사인이 나와서 ‘감독님이 저렇게 좋아하신다면 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극중 이지은은 감정을 터트리는 것보다는 꾹 누르고 연기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그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두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 그게 관람차 신과, 호텔에서 각각의 인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그래서 두 부분을 연기할 때 처음에는 아주 슬프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계속 대본을 읽으면서 관람차 신에서는 특히 내가 많이 울거나 많이 슬퍼하면 소영이의 자기연민으로 비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신에서만큼은 슬프고 진솔한 대화라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자기연민으로 비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단호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수(강동원 분)가 소영이를 용서하고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나. 소영이는 계속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고, 동수도 버림받은 인물이다 보니 소영이는 어느 정도 아들 우성이가 하는 말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버린 건 버린거야. 내가 잘못한 부분을 네가 이해해줄 필요는 없어. 그렇게 나를 이해해주려고 하지 마’라고 엄마로서 단호하게 얘기해 주고 싶었을 것 같았고, 많이 울고 슬퍼하는 것보단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영이 했던 ‘아이를 낳기전에 죽이는게 낳아서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볍냐’는 대사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이지은은 “저는 당연히 그 인물로 연기에 임하는거라 소영이 개인의 가치관이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전혀 거리낄 게 없었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윤리적으로 지탄받아야 하는 역할은 소화할 수 없지 않나”라면서도 “감독님께 말씀드렸던 건, 그 대사가 소영이의 가치관인지 영화의 주제인지였다. 소영이 가치관이라면 거리낄 게 없었지만 만약 영화의 주제라면 제가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신념, 가치관과 너무 다른 지점이 있어서 참여하는 데 고민이 많아질 것 같았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그래서 소영이의 그 대사가 영화의 근본적인 주제인지 궁금했고, 감독님이 ‘그렇지 않다. 수진(배두나 분)이와 소영이는 다른 가치관을 가져서 대립하고, 그 후에 서로가 관철되지 않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유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지점이 나온다’는 설명들을 상세하게 해주셔서 의문이 생기는 지점을 완벽히 해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소 열린 결말로 끝난 영화의 엔딩에 대해서는 “소영이에게 있어서 긍정적인 엔딩이 아니었나 싶다. 세상에 너무 지쳐있고 마음을 열지 않았던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한걸음이라도 세상에 나갈 준비가 돼 있다는 지점이 소영이에게 있어서 희망적인 결말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앞으로 삶들이 마냥 낙관적이고 희망적이진 않을 거다. 다시 비관하는 순간도 올거고, 숨게 되는 지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시도를 했다는 점 자체가 희망적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신을 연기할 때 마음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소영이 앞에 펼쳐질 날들이 당연히 해피 해피 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과, 그럼에도 소영이의 진 엔딩 신은 달려가면서 끝난다. 달려갈 때 표정이 드러나지는 않는데, ‘뒷모습일지라도 웃음에 가까운 표정이었으면 좋겠다’, ‘달리는 걸음이 힘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지은은 “‘브로커’가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냐”고 묻자 “상업작품으로 첫 데뷔한 영화라서 그것만으로도 뜻깊게 남을 작품”이라고 답했다. 그는 “첫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큰 역할을 맡았고, 누군가 저를 믿어줘서 가능했던 역할이라 거기에 대한 감동이 크다. 영화로서 보여준 게 거의 아무것도 없는 신인 배우인데 감독님, 스태프, 배우 선배님들 모두가 믿어주신 것 자체가 그 사람들의 믿음에 보답하는 연기자가 돼야 한다고 오래오래 저를 채찍질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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